2012. 5. 12.

라오스의 아홉 살 뚜이의 꿈

라오스의 아홉 살 뚜이의 꿈
 
세계에서 경제적 빈곤한 국가 중의 하나인 라오스를 아시나요. 라오스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 크기의 1.1배 정도이며 인구수는 7백만 명 정도입니다. 국민 평균수명이 64세로 인구의 26%가 빈곤층으로 어렵게 살고 있으며 또한 전체인구의 27.3%가 문맹자이고 전체 인구의 51%20세 이하로 구성된 동남아에서 가장 오지로 불리는 나라입니다. 라오스는 한때 백만 마리의 코끼리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란상이라는 이름으로 루앙푸라방에 수도를 둔 나라였으나 1560년 수도를 루앙푸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긴 후 비엔티안이 라오스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은둔의 나라’,‘시간이 멈춰진 나라로 세상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입니다만 19892월부터 서방 세계에 관광을 개방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미지의 나라로 불리고 있습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의 60~70년대와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심성이 겸손하고 소박한 민족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하여 방비엥, 루앙프로방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에 아홉 살 뚜이가 살고 있습니다. 뚜이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농사를 져야 해요.’ 아홉 살 뚜이의 어깨에는 책가방 대신 무거운 삶의 무게가 가득 들려져 있습니다. 부모님을 대신해 농사일을 하는 뚜이는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밭으로 향합니다. 하루 종일 찌는 듯한 무더위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이지만 뚜이는 온 종일 밭에서 농사일을 합니다. 뚜이네 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지만 뚜이에겐 작은 욕심이 하나 있습니다. 남들보다 좋은 집에서 사는 것?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러면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보다 더 소중한 뚜이의 욕심은 남들처럼 학교에 다녀보는 것이 어린아이인 뚜이의 꿈입니다. 그는 화려하지도 새것이 아니라도 좋지만 작은 칠판에서 하얀색 분필로 글씨를 쓰고 싶고, 책가방은 없지만 보자기에 보듬어 싼 책을 들고 싶고, 깨끗한 옷은 아니지만 엄마가 얻어 주신 옷을 입고 오늘도 학교로 향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뚜이의 이런 꿈을 엄마는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으로 바라봅니다. 뚜이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요.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네요.’그녀는 힘든 내색도 없이 오늘도 땡볕에서 농사일을 하는 뚜이를 보라보며 엄마로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마음이 더 아려옵니다. 또 다른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인 11살짜리 안디는 가난 때문에 부모님이 매일 아침 비엔티안으로 일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루 종일 4살짜리 동생을 돌봐야 합니다. 한시도 형의 곁을 떠나지 않는 안디의 동생 때문에 안디는 동생을 안고 학교에 등교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모두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지만 안디의 가정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교육비는 물론 생활비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매일매일 동생을 돌보며 학교에 등교하는 안디입니다. 이런 뚜이와 안디와 같은 어린아이가 너무나 많은 나라가 바로 라오스입니다. 뚜이와 안디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풍요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 놓고 배움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가 이런 아이들을 후원한다면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후원하는 우리 스스로는 얼마나 행복해질까요? 인구의 절반이 20세 이하인 라오스는 학생들의 취학률이 초등학교 71%, 중학교 취학률이 39%, 고등학교 취학률이 19%, 그리고 대학교 취학률은 2%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열악한 경제 환경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뚜이처럼 그리고 안디처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고,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 없는 환경에서 어린 시절의 학교라는 추억은 간직하지도 못한 채 그냥 일터로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들도 우리의 아이들과 똑같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고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외면하여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친구와 함께 뛰어 놀 수도 없으며 오직 가족을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공부란 꿈에서나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어린아이들을 위해 우리 함께 사랑을 선물하여 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보내주는 작은 사랑이 라오스의 빈곤 아동,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등불이 밝혀진다면 지구는 더 밝고 행복해지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국가 차원 또는 여러 NGO 단체 등에서 동남아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지원이나 후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라오스에는 아직 제대로 된 지원이 거의 없어 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 지위를 획득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소년을 위한 NGO 단체 중의 하나인 비영리 공익단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제 3세계 빈곤 아동, 청소년을 위한 행복 도서관 짓기 운동의 일환으로 라오스에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청예단에서는 라오스에 도서관을 지어 주고 있고, 교육을 통한 빈곤한 아이들의 휴먼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고, 파견 직원을 통해 도서관운영과 마을 청소년 교육, 청소년 자원봉사자 실습 현장 마련, 대학생 봉사 활동 실시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예단에서는 도서관 짓기 운동 이외에도 도서기부캠페인과 라오스 책 오디오를 만들어서 시각장애인도 책을 들을 수 있는 행복한 오디오북 캠페인그리고 20개 학교의 낡은 칠판을 교체해 주기 위한 ‘YELLOW BOARD(희망의 칠판 캠페인)’을 함께 전개 하고 있습니다.
 
배울 수 있는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잘 먹을 수 있는 나이에 잘 먹지 못하는 것 역시 사회가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범하는 폭력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 가족 아니면 우리나라의 아이들만을 생각하고 그들만을 위한 활동을 하기 보다는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게 사는 여러 나라의 아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밥을 먹고 싶어도, 친구와 함께 놀고 싶어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라오스의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은 그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행복을 만드는 일입니다.
 
청예단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 학생들을 돌보고 가해 학생들을 선도하는 일을 17년 동안 해 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사업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의 빈곤 청소년에게도 후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청예단에서 이름도 생소한 국가인 라오스에 도서관을 짓는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점심을 거르는 아동, 청소년들이 있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 한 번 못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데 왜 그리 먼 나라 라오스까지 가서 도서관을 지어주려고 하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청예단은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청소년들이 함께 행복을 누려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 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아 이렇게 성장하였고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베풀고 후원하는 일에는 아직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각 나라로부터 제대로 후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라오스를 후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동안 청예단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혹은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한 자발적 자퇴, 질병으로 인한 학업 중단한 청소년 그리고 왕따, 괴롭힘 등 학교폭력의 이유로 제도권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이 다닐 수 있는 조그마한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오랜 기간 배움을 이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은 쉽게 자신감도 잃어버리고 자존감도 낮아지게 됩니다. 이런 청소년들을 다시 배움의 길로 접어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잦은 결석, 몸에 밴 불규칙한 생활 습관, 무기력함 등이 일상화 되어버린 아이들은 목표의식도 업고 장래에 대한 설계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미래에 대한 자신을 심어주는 일이 우선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여 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큰 삶의 변화를 주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03년 문화관광부 청소년육성기금 지원으로 2주간의 인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대안학교 학생들은 이들이 만나고 본 인도의 자기 또래 청소년들이 자신을 둘러 싼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배움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게 되었고, 또한 자신들이 당연하게 부모님께 요구하고 누렸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이고 행동이며 누리기 어려운 것들이었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은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씩 대안학교 생활에 집중하게 되면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고 지금은 모두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해서 대한민국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청예단에서는 여러 차례 학교폭력 피해 청소년들과 인도,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저개발 국가를 여행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또 그 여행을 통해 저개발국가 청소년들의 현실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개발국가의 청소년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우리가 얻어간 만큼 저개발국가의 청소년들에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청예단이 해외사업에 대한 첫 발을 내딛기로 결심하고 여러 계획을 세울 즈음인 2009년에 청예단은 UN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특별협의지위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협의지위란 UN경제사회이사회 본회에는 직접 의제를 제안할 수는 없지만 제한적으로 발언할 수 있으며, 산하 기구회의에서는 제한 없이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며, NGOUN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얻은 지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여개의 NGO 단체가 UN 경제사회이사회에 등록되어 있으며 청소년 봉사단체로는 청예단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NGO들이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나라의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라오스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실정입니다. 이에 청예단은 아직 지원이 미흡한 나라인 라오스를 돕는 일이 더욱 보람찬 일이라는 생각으로 라오스를 돕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라오스를 돕기로 결심한 이후 청예단은 빈곤, 인권, 환경, 비폭력, 교육 등 다양한 도움 중에서 무엇이 라오스를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사업인가를 파악한 결과 교육지원이 우선이라 결정하여 교육 사업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라오스는 20세 이하의 젊은 층이 많으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교육을 받았어도 취업할 직장이 없기 때문에 젊은 계층에 대한 교육이 라오스의 미래를 밝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라오스에서는 책을 쉽게 구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일부 도서관이 있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어 아이들이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으며, 도서관에 가고 싶어도 갈 도서관이 없다는 사실에 감안하여 라오스의 아동,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청예단은 마침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방큰 지역의 붕파우 마을에 도서관을 지어주려는 한국 젊은 건축가들의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행복도서관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청예단은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해 1일 호프집, 바자회, 행복사과 팔기 등 다양한 모금 행사를 통해 건축비를 마련해 갔으며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20111226일 라오스 현지에서 도서관 건축을 위한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을 지을 마을은 라오스의 붕파우라는 곳으로 마을 전체가 572가구로 총 2,7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Room to read'라는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이 지어준 유치원이 각각 하나씩 자리하고 있는 라오스의 시골 마을입니다. 처음 이 작은 시골 마을에 도서관을 짓겠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신뢰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답사팀이 다녀가고 건축을 위한 해외 봉사단이 마을에 북적거리니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신뢰를 보내게 되었고 도서관 건축을 위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남을 돕기 위해 하는 단순한 일이 아닌 행복을 만드는 숭고한 정신이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청예단을 비롯한 도서관 건축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도서관의 못 하나, 나사 하나, 기둥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건축에서의 문제는 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품질이 뛰어난 것이 아니어서 건축과정에서 여러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고 또한 수시로 마을의 어른들과 의견 충돌과 갈등도 발생하였으나 서로 조금씩 양보해 가면서 결국 3개월 만에 도서관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청예단은 도서관 공사를 하는 기간에 한국에서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15명으로 이루어진청소년 평화 교육 봉사단을 모집하였고 이들이 라오스에 가서 도서관 건축을 위한 노력 봉사,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육 봉사, 한국과 라오스의 음식, 놀이, 노래 등을 서로 배우고 알려주는 문화 봉사도 함께 하면서 양국의 친선도모에 기여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청예단의청소년 평화 교육 봉사단은 매년 2~3회의 봉사단을 구성하여 라오스 도서관 현장으로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과 라오스, 두 나라의 우애와 협력, 그리고 그 소통의 현장에 우리 젊은 청소년들이 앞장 설 수 있도록 하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예단은 앞으로도 라오스에 대한 많은 지원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라오스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지원 사업입니다.
도서관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비치하여 지역의 아동, 청소년뿐만 아니라 마을의 청년을 비롯한 성인에 이르기까지 독서를 통해 삶을 윤택하게 하는 만드는 일입니다. 또한 라오스의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교육지원을 통해 아동, 청소년들이 글을 몰라 평생 배움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교육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또한 라오스 내에서도 방큰 지역 외에 교육 환경이 열악한 타 지역에도 도서관 건립을 비롯한 학교 내 교육 환경 개선사업 지원 계획 또한 책이 부족한 마을에는 책을, 교육 기자재가 부족한 마을에는 교육 기자재를, 물이 부족한 마을에는 우물을, 전기가 부족한 마을에는 자가 발전기를, 그리고 교사가 부족한 마을에는 교사를 지원하여 배움의 기회와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업으로는 마을 청년들을 위한 직업교육입니다. 이 곳 청년들은 농사를 짓는 일 외에는 소득이 없습니다. 그런 마을의 청년들을 위하여 재봉, 컴퓨터, 미용, 의류 관련 직업 교육 등을 하여 준다면 얼마나 큰 행복이겠습니까? 직업 교육을 통해 라오스의 청년들이 새로운 분야의 직업에 도전해 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일은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활용할 수 있는 재봉틀이나, 컴퓨터, 미용용품들을 모아 그들의 직업 교육 재료로 활용하여 단순한 자원 활용 수준이 아닌 자연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활동을 계속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세 번째는 빈곤으로 교육에서 소외된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결연 사업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부모가 가까운 태국, 캄보디아로 돈벌이를 떠나게 되면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자기보다도 더 어린 동생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엄두도 못 낼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거나 과일 열매를 따는 일로 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이들 어린아이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후원자들과 1:1 결연을 맺어주는 일입니다. 라오스에서 초등학생의 경우 연간 교육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월 25천원만 있으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학교를 빠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의 뜻 있는 후원자들과 미래의 라오스를 이끌어나갈 아동, 청소년들이 결연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들도 또한 후원자들도 행복하리라 생각됩니다.
 
청예단에서 국내의 청소년 폭력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는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잘 먹고 성장해야 할 나이에 잘 먹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세계에서 함께 사는 모든 아동, 청소년들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꿈꾸며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됩니다.
 
청예단은 17년전 사랑하는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어버린 한 아버지에 의해 어렵게 시작하여 국민들에게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고 그 예방과 근절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미 월간조선 3월호를 통해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알리면서 학교폭력예방에 함께 동참하자는 내용을박시호의 행복편지’- ‘사랑하는 아들아 나를 용서해 다오편을 통해 소개한 바 있습니다. ‘19956816살의 꽃다운 나의 아들 대현이가 5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죽음으로 그동안 학교에서 폭행과 협박 그리고 강탈이 뒤범벅된 집단 괴로힘 끝에 삶을 마감하고 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갔습니다. 내 사랑하는 외아들 대현이는 해외생활도 잘 적응하였고 한국에서 학교생활도 잘 적응해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반장으로 선출되어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높고 활달하던 대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홀로 다른 학군의 모 고등학교로 배치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내 아들은 준수한 얼굴과 좋은 성적으로 남녀 간에 인기가 높아 소위 짱들의 타깃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학교 친구들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낯선 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의 짱들로부터 끊임없는 시달림과 구타를 당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몰랐습니다. 가끔 이상한 느낌이 있어 물어 볼 때면 거짓말로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대현이가 그렇게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가장의 큰 일인양 생각하고 가정에는 너무나 소홀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대현이는 운동도 잘하고 덩치도 컸지만 하늘같은 형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아들은 끝내 온몸으로 항거하며 아파트에서 두 번이나 몸을 던져 이 부모 가슴에 이토록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참기 힘들고 괴로웠으면 차라리 죽을 생각을 하고 또 결행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메어집니다. 저는 부모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자학하며 이 힘든 길을 선택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젠 쉬고 싶어요’16살 대현이가 남긴 마지막 메모입니다.----”
 
지금도 정부를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 학교 등에서 학교 폭력 예방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서 집중 보도를 통해 예방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한 아무 죄의식 없이 폭행에 가담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은 얼마 전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한 14세 중학생을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의 자살 소식 입니다. 14세 김모 학생의 절절한 내용을 보면서 우리의 소명이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긴 편지를 옮겨 봅니다.
 
제가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XXX하고 XXX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스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XXX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에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친구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XXX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때리는 양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때리고, 우리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김○○이나 윤○○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줄 거예요.
 
오늘은 1219,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엄마, 나에게 잘 대해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에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든 척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번도 안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난다며 제 영어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XXX은 한문, XXX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19)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줬어요. 예를 들면 윤OO, OO, OOO, O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해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 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주고, 나에게 잘해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갈 거 같지만 우리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참으로 가슴 아픈 편지입니다. 이 지경이 될 동안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앞으로도 청예단은 학교폭력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사명감을 갖고 활동할 것입니다. 또한 청예단은 국내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나라에서 고통 받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지원활동에 더욱 관심을 갖고 국민들과 함께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나라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각 나라와의 교류를 통하여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우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조그마한 도움의 손길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올바른 교육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소외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어깨를 내어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일을 성실히 수행해 갈 것입니다. 지구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이제 어려운 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좋은 활동에 많은 분들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건전하고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청소년 평화 교육 봉사단에 참여하고 활동을 경험한 학생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우애와 협력을 배우고 또한 배려와 나눔 그리고 진정한 소통을 배우는 우리 젊은 청소년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이번청소년 평화 교육 봉사단참여하고 돌아 온 고등학생 김△△의 해외 봉사 활동 후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2125() 오후 11, 베트남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라오스 행복도서관 건립을 위한 해외봉사단 1기들이 인천공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힘들었으나 행복했고, 가끔 짜증도 났지만 재미있었던 라오스 해외 봉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인천, 베트남, 라오스 순으로 숙소의 질은 떨어졌다. 라오스에 도착한 이후, 우리는 버스를 대절하여 붕파우 마을로 향했다. 설렘과 걱정으로 뒤섞인 버스에서는 잠도 오지 않았다.
 
1. 라오스 아이들과의 만남과 문화 봉사
 
첫 교류를 위하여 우리는 붕파우 마을의 초등학교에 갔다.
그곳에서는 붕파우 마을의 아이들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환영 이벤트에 해외봉사단 일행은 모두 기쁨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라오스는 초등학생들도 교복을 입는 것 같았다. 하얀 웃옷에 검은 바지. 그들의 손에는 그들이 손수 만든 꽃목걸이가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이후 그들은 우리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마을을 구경했다. 마을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문명과 동떨어진 사람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여유로움, 평안한 성격,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국에서도 보았을 법한 흙길 등. 마을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일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첫날부터 일정이 바뀌었다. 노력 봉사 시간이었지만, 갑작스런 라오스 아이들의 방문으로 일정은 문화 봉사 시간과 바뀌게 되었다. 문화 봉사를 하면서 우리는 그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5일 동안 라오스의 아이들과 함께 했다. 종이접기, 제기차기, 게임, 율동 연습, 흰 티에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 페이스 페인팅, 집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도 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해서 프로그램 진행 시간에 여유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예상과 너무 달랐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어서 일정이 빨리 끝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2~3시간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는데도 시간은 1시간 가량이 남아 봉사단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회의를 하면서 일정을 아주아주 빡빡하고 빽빽하게 짜 가야 했다. 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모자라 걱정을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우리(문화 봉사팀)도 어려운 일정이 있었던 것이다.
세계 각국의 건물 짓기라는 놀이감을 가져갔다. 그것은 3~6세가 적정 연령이라 써져 있었다. 그래서 ‘6세용이 뭐가 어렵겠어하는 생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진을 찍으며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한국인 한 분과 라오스 어른도 함께 해야만 했다. 다행히 무사히 마무리를 짓긴 했으나, 식은땀을 닦던 그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 내가 흘린 땀과 시간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가치
 
문화 봉사가 끝난 이후에는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복했던 점심시간이 끝나면, 노력 봉사 시간이 된다.
노력 봉사란, 라오스 행복 도서관 옆의 유치원 페인트 칠하기, 도서관 울타리 세우기 등이었다. 사실, 별로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 중 가장 쉬워 보였던 페인트를 택했다. 다른 일들에 비하면 신사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듯이 그 일의 쉬움조차 상대적인 말이었다.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힘들었다. 물론 육체적인 힘듦은 적었다. 해도 비추지 않는 그늘에서 일을 했으며, 가끔은 앉아서 유치원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릇, 일이란 하면 할수록 목표와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점점 끝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해지고 희망을 갖게 돼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그렇지 않았다.
해도 한 듯 보이지 않았고, 페인트 칠을 할 유치원은 너무 넓고 높았다. 그리고 환풍구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결과물에 뿌듯해 하는 울타리 팀과는 대조되게 우리 페인트 팀은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만 갔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자,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면서 우리는 건들기라도 하면 금세 터져 버리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다른 봉사팀과 역할을 바꾸어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동안 나의 불만은 투정에 지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울타리 작업은 정말 힘들었다. 특히 땅을 파는 데 있어서는 내가 한국의 학교에서 파던 땅과 너무 다름을 느꼈다. 아무리 찍어도 땅이 파이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땅을 파며 그동안의 투정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1회 했을 뿐이지만, 나는 어깨에 알이 배겼고, 양 손에 물집이 잡혔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울타리 기둥이 세워졌다는 뿌듯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3. 헤어짐과 눈물, 그리고 그리움
 
마지막 노력 봉사가 끝난 후 우리는 짓궂은 장난을 하기로 했다. 그 동안 우리가 그들과 함께 했던 나날들을 사진으로 엮은 다음, 슬픈 노래와 함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내가 충분히 모질어졌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애들이 울면 멋진 사람처럼 위로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그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만큼 모질지 못했다.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슬픔을 느꼈다. 3이나 되어서 이런 것에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어이없었고, 웃겼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위로를 받으며 그만 울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또 울음이 나왔다. 내가 울자, 주변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네 명쯤이 나를 안아주었다. 사방에서 안긴 채 나는 또 울었고, 내가 우니까 아이들도 울었다. 음악이 진짜 하이라이트로 치닫자, 나는 음악이 슬퍼서 다시 울었다. 우리가 우니까 사방에서 한두 명씩 울었고, 울면서 내게 오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나는 팔을 최대한 뻗어,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다.
 
내 울음은 단지 헤어짐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라오스도, 붕파우 마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들의 순수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아니다였다. 그래서 그게 너무나 슬펐다. 그들과 만남에 즐거웠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순수함, 순박함이 나는, 그게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음에 울음이 터졌다.
 
라오스에서의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라오스 아이들과 보낸 시간과 그들의 순박한 얼굴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보고 싶다. 한국에 와서 나는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라오스보다 부족한 게 무엇일까? 살아가는 삶의 질은 반드시 물질적 만족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안녕, 라오스! 함께 했던 짧은 시간동안 나와 웃고 울었던 라오스의 어린 친구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모두 안녕, 안녕, 안녕---------
 
우리 함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들을 돕기 위한 후원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빌 게이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꿈꿔 봅니다.
 
후원계좌 : SC제일은행 378-10-011886 (예금주 : 청소년폭력예방재단)
ARS 후원전화 : 060-700-1479 (천사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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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감동시킨 일본인 며느리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느낀 지 가 얼마나 되었는지요? 아니면 남에게 진한 감동을 준 적은 언제였는지요? 감동을 많이 느끼거나 감동을 많이 주는 일이 행복한 일인데 그런 일들을 많이 만드는 하루 만듭시다. 행복하세요. https://yout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