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3.

월간조선 7월호 - 박시호의 행복편지


  1.  
  2. 문화 · 연재
2012년 7월호
  1. 문화 ·  
  2. 연재 

박시호의 행복편지

귤 하나의 사랑 /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엄마는 늘 배가 불러

글 : 박시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사진 : 박한나 Illustrator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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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귤 하나의 사랑


  저는 결혼을 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사십이 다 되어 결혼을 하여 조금은 늦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는데 몇 개월 전부터 심각한 이혼의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 하죠. 우리 부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는데 와이프 입에서 종종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일로 지쳐 있던 때라 맞받아쳤고요.
  
  순식간에 각방을 쓰고 말도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 내고, 우는 일이 많아지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며 아내는 더 불같이 화를 냈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움만 하였지요.
  
  저는 가끔 외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아내는 신경도 쓰지 않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어떤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방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더 까먹고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저는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지금 다시 기억해 낸 것입니다.
  
  저는 결혼 후 5년 동안 제 손으로 한 번도 귤을 사들고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그 순간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애할 때 길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이 보이면 꼭 3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 때는 귤을 박스째로 사들고 가던 내가 아내에게는 5년간이나 몇백 원도 안 하는 귤 한 개를 사주지도 않았다니 맘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어느덧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문제와 내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지요.
  
  반면 아내는 저를 위해 철마다 보약을 준비하고, 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만드는 등 참으로 신경 많이 써줬는데 말이지요.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또 귤 한 봉지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귤 하나를 까먹어 보았는데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들어와서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습니다.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 개를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참으로 몇 달 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에게도 몇 알 입에 넣어주고요.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제 모습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니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피어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냥 출근하려고 하는 저를 아내가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고….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고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남기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나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 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생기더라고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저는 정말 바보 중에도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 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저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귤이든 무엇이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사랑은 양보입니다. 특히 부부간에 싸워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이젠 져주기로 했습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김수락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 남자를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러고 나서 아이까지 둘을 나은 어느 가정주부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수녀가 되려 했던 자기에게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해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요. 이들이 연년생 둘째를 가졌을 무렵에 남편은 대장암 진단으로 이미 한쪽 대장을 잘라내고 기적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병이 발병하여 암 검사에서 암이 온 내장에 퍼져 올해를 넘기긴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암 치료도 필요치 않고 그냥 환자의 몸을 편하게 해주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굵은 눈물만 흘릴 뿐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생각합니다. 그가 너무 불쌍하다고….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자라온 그가 불쌍하고, 또 그 없이 성장하게 될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무엇보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가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하여 가슴이 아프다고.
  
  아내는 남편에게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그 사실을 차마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간 못했던 사랑을 표현하는 것밖에는…. 그녀는 남편을 위해 힘든 내색을 감추고 밝은 아내와 엄마의 모습으로 남편을 위해 또 자식을 위해 사랑의 힘으로 버팁니다.
  
  남자는 변해가는 몸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자꾸만 악화되어 가고 몇천 그램의 모르핀을 투약해서 이제는 아내의 이름조차 쓰기 힘들 정도로 정신력이 희미해져 갈 뿐만 아니라 또한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고, 배변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남자는 더 해가는 병을 이기고자 강한 마음을 먹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통 속에 스스로 위축되어 갑니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내는 해줄 것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위로와 포옹 그리고 남몰래 흘리는 눈물뿐….
  
  이젠 남자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남은 기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또한 엄마로서 남는 역할보다 불쌍한 남자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난다는 미안함이 들까 봐 그게 더욱 가슴 아픕니다.
  
  그들은 어느 날 아이들에게 남겨줄 비디오를 함께 찍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추억의 사진을 다시금 꺼내보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러나 사진 속의 아빠 모습을 보면서 예전 같지 않은 현재 모습에 그녀와 아이들은 너무나 슬픕니다.
  
  그는 아내의 눈을 보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젠 아이들도 아빠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슬퍼합니다. 아빠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딸아이의 울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필름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빠가 왔다고 발을 씻겨주던 딸아이… 손이 아빠만큼 컸다고 으쓱해 하던 아들의 웃음이 먼 일만 같이 느껴지며 눈물이 쏟아집니다. 남자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해 사랑해’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는 지금 그 말 외에는 달리 다른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 후 결국 일인실로 옮긴 남편은 이미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숨 쉬기도 버거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힘을 내어 아내의 손을 잡습니다. 그녀 또한 손을 꼭 모아 잡고 몇십 년은 늙어버린 남편에게 퉁퉁 분 눈으로 마지막 부탁을 해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데 나를 위해 너무 헌신적으로 사랑을 해주었다고….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사랑했지만 제대로 표현도 못 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미안하다고…. 그동안의 잘못 다 용서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눈물로 화답합니다. 당신 살 수 있어요. 힘을 내세요. 제발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혼자 떠나는 아빠를 위로해 드리라며 ‘고맙습니다. 사랑해요’를 일러줍니다. 아내는 홀로 먼 길을 떠날 남편도 불쌍하지만 아빠 없이 남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더 눈물을 흘립니다.
  
  오열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눈물 짙은 ‘사랑해’ 한마디 속에 남자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맙니다.
  
  아아… 마지막… 거친 호흡 속에 이내 가늘어진 숨소리… 그의 숨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순간…
  
  아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맞춤해 줍니다. 그녀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아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면서 그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의 울음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이 희미해짐을 느끼면서 그들을 두고 가기 싫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남기고 떠나는 마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만난 그녀는 아직도 남편의 문자와 사진들을 지울 수가 없어 전화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내에게 보내준 ‘힘내라 그리고 사랑한다’는 문자들….
  
  그녀 가슴은 여전히 그의 모습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남긴 문자들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어 아이들과 열심히 살 것이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며칠 후 십 년째 맞는 결혼기념일 날.
  
  그녀는 남편의 묘 앞에 와서 외로워하지 말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자기야 사랑한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지금처럼 그를 사랑했다면, 지난 9년간의 결혼생활이 너무나 행복했을 것 같아요. 그가 떠난 후 생각해 보니 왜 그때는 이런 사랑을 해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듭니다. 지금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마음속이나마 영원히 남편과 함께하니까….”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가슴 시린 이별이야기이지만 행복해지기를 빕니다.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신은 왜 갈라놓으셨을까요?
  
  신은 왜 행복한 가정을 훼방을 놓았을까요?
  
  그러나 이들에게 비록 남편이 그리고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지만 하늘나라에서 이 가족을 지켜줄 것입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함께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늘 함께 있을 겁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남편은 그녀와 자식들이 필요할 때에만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함께하며 서로 사랑을 나눌 겁니다. 
  
  남편은 고요히 나타나 그들을 감싸며 못다한 사랑을 베풀 겁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마치 만해 한용운님의 시 ‘알 수 없어요’ 처럼….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윤승기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엄마는 늘 배가 불러


  어제는 어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모처럼 형제들이 모여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모두 6남매입니다. 원래는 7남매인데 제 동생은 낳자마자 며칠도 안 돼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6남매가 어렵게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기억은 없으나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 함께 사시다 돌아가셔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산골에서 정말 어렵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6남매를 위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당신 자신보다 자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지요. 
  
  그런데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어머니만큼 애틋한 사랑의 정은 없었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엄하기만 하셨고 자식들과 아기자기한 생활이라든지 또한 자식들과 함께 어디를 다녀본 아버지와의 기억은 별로 없을 정도로 어머님과 같은 사랑은 못 느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 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면 학교 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풀을 베는 일이었습니다. 소죽(소의 밥)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풀을 베어 비축해 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 갔다 오면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떠납니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소가 잘 먹고 힘이 세야만 조그마한 논이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활을 하니 학교생활은 대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기계보다도 더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몸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아플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지요.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매일같이 소죽과 아침식사를 머리에 이고 소를 이끌고 논으로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자식들만을 생각하며 무쇠같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의 부모들이 과연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힘들고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기억 속의 제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어머님이 모처럼 고향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이 보고 싶다고 하여 저와 함께 이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기 때문에 그날은 어머니가 저를 위해 특별히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하였는데 그런 어머니가 저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이고 없는 살림에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은 아팠지만 그래도 모처럼 먹는 고깃국에 저는 너무나도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우리는 설렁탕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설렁탕이 나오자 어머니는 제게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고기 대신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끔 쳐다보며 국물을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라고 내 뚝배기로 어머니 뚝배기를 툭 쳤습니다. 순간 뚝배기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리 크게 들리며 그 소리가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이 안 들도록 조심스럽게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어린 마음에 창피함과 서러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얼른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닦아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걱정만 하시면서 자꾸 많이 먹으라며 당신은 배가 부르니 걱정하지 말고 얼른 먹으라며 자꾸 국물을 따라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물과 국물이 범벅이 된 설렁탕 국물을 먹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국물이 짠 걸까? 눈물이 짠 걸까?
  
  그 당시의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난하여 고기 한 번 먹기 어려운 시기에 늘 배가 부르다, 입맛이 없다…. 자식들 먹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시면서 나는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저는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린 사람들은 크느라고 늘 배가 고프지만 어른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결혼하여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나의 어머니보다 나의 자식들을 더 잘 키우고 있나 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만큼 나도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왜 나는 늘 부족할까.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지금에야 어머니의 은덕을 생각하면 무얼 하나? 살아계실 동안 효도를 다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이제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살던 우리는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은 생각해 보면 자식들을 위해 하루 장사거리를 떼러 새벽기차를 타고 먼길을 다니며 우리를 키웠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조차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종일 힘든 노동을 하면서 늘 자식 하나 잘되기 바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있으면 무엇이든 시장에 내다 팔아 단돈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당신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지요. 그 당시의 겨울은 왜 그다지도 추웠던지, 또 왜 그리 아이들은 많이 낳았는지, 늘 어머니들은 등에 갓난아이들을 업고 다녔지요. 그때 배운 것이 바로 사랑은 몸과 몸으로 전달되는 따스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은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 잘해서 오늘의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보도를 통해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 또는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들을 볼 때면 그들도 곧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난 후 부모님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을 때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때 후회를 한들 이미 소용없는 일인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할까요? 언젠가 행복편지를 통해 본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가 생각납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 다오.
  
  늙어서 우리가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우리가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못 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를 목욕시키려고 따라다니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니?
  
  혹시 우리가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무심하거든 전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웹사이트를 통하여 그 방법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다오. 우리는 네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는지 아느냐? 상한 음식 먹지 않는 법, 옷을 어울리게 잘 입는 법, 너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 등….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우리가 먹기 싫어하거든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언제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단다. 
  
  다리에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겠니?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인이 된 우리의 나이는 그냥 단순히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를 말하고 있음을 이해해 다오.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윤상현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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