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 · 연재
2012년 9월호
[편집자 주]
이 내용은 어느 평범한 60세의 마라토너 허정회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저서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이 내용은 어느 평범한 60세의 마라토너 허정회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저서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 |
‘달리기 세상’에 입문한 지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마라톤 72회, 하프마라톤 26회 등 나름 부지런히 달렸다. 훈련을 위해 달린 것까지 환산하면 적어도 1만km는 될 것 같다. 1년에 1000km 정도 달린 꼴이다.
우리나라 마라톤 인구는 약 5만명으로 추산된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소위 메이저 대회에 2만여 명씩 참가하는 것으로 가늠해 볼 때 그 배 이상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중 0.1%가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달릴까? 아마 답은 각인각색(各人各色)일 것이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가끔 당신은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 나는 산을 닮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風光) 등 모든 걸 다 내주면서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절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인간이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내면 가끔씩 혼내주어 경종을 울린다.
나는 마라톤을 닮고 싶기에 달린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곧잘 마라톤과 견준다. 긴 여정(旅程), 오르내리막이 있는 코스, 이탈할 수 없는 주로(走路), 역전과 재역전의 연속, 달릴 때의 고통과 완주의 기쁨 등 마라톤에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동물의 종(種)에 따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이라고 한다. 이를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5000m, 1만m 우승자)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고 표현했다.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적확(的確)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 수영은 학습이지 본능은 아닌 것이다. 걸을 수 있는 아이에게 달리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사람들에게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하면 선뜻 수긍하지 않다가도 이 말을 들으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달리기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최적의 운동이다.
달리기는 행복이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아침 양재천에 나가 달린다. 밤잠을 설쳐도 새벽 다섯 시 경이면 운동화끈을 매고 집을 나선다. 양재천의 주인인 새와 곤충과 물고기가 객(客)을 반긴다. 달리면 무상무념(無想無念)해진다. 근심은 인간을 동요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근심을 유발하는 거짓된 생각이 달리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낡고 나쁜 생각은 나가고 새롭고 좋은 생각이 우리 몸에 스며든다. 운동 중에서 가장 단순한 운동인 달리기와 걷기가 인간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낀다.
달리기는 자유다. 나는 출장 갈 때 잊지 않고 반드시 챙기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수영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운동화다. 호텔을 정하면 사전에 인근 조깅 코스를 물색하고 마땅치 않으면 호텔 내 수영장을 찾는다. 그것도 시원치 않으면 할 수 없이 헬스클럽 내 트레드밀에서 몸을 푼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면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 같아서 답답하다. 자연에서 달릴 때 진정 자유인임을 느낀다. 달리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살고 그들을 닮고 싶기를 기원한다.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다. 나는 최근 지난 10년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후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다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로 했다.
달리기 초기 나는 마라톤은 발, 즉 몸만 튼튼하면 완주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달리면 달릴수록 마라톤은 따뜻한 마음과 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발과 마음과 혼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조화롭게 작동되어야만 마라톤 완주가 가능한 것이다.
큰 대회에서 달리다 보면 시각장애인을 비롯해 양팔이 없는 사람 등 많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 못지않게 달리는 걸 자주 본다.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소위 비장애인들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인간의 본능인 달리기를 멀리하고 있는데 대체 그들은 왜 달리는 것일까.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달리기는 도전이다. 마라톤은 42.195km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100리가 넘는 먼 거리다. 달리면 달릴수록 멀게 느껴진다. 강한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대회에서 30km 이후 그날 처음 달린다는 아주 힘들어 하는 주자를 종종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 기어서라도 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마라톤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전조차 못 할 것이라고….
마라톤은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경주다. 이봉주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제롬 드레이턴(Jerome Drayton·캐나다 출신의 197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은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마라톤을 할 때 느끼는 고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마치 태어나면서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달리게 되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 나는 재미가 없어 달리기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운동이 너무나 많다. 나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중에 대부분은 조금씩 해보았다. 내가 달리기를 안 했던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년 전,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하다가, 귓병 때문에 수영을 할 수 없게 돼 잠시 달리기를 하다 지금은 이렇게 ‘달리기 전도사’가 되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내 건강상태는 오히려 더 양호해졌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하게 된 이후 체중은 10kg이나 줄었다.
내가 마라톤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얘기다. 사람은 원래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잘 못 맡는 법인데, 한 30km 정도 지나면서 내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곤 했다. 그런 악취는 한 열 번쯤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나더니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몸 안에 있던 각종 노폐물 등이 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정도 거리에 가면 다른 사람 몸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러한 노폐물들이 암의 뿌리가 되는 게 아닐까 미뤄 생각해 본다.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이것은 자전거가 아닙니다》라는 책에서, 이 책은 자전거 타는 기술에 대해 다룬 책이 아니라, 암에 걸린 저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절망하지 않고 암을 극복하는 투병기라고 썼다. 오늘의 이 내용도 달리기 기법에 관한 글이 아닌 ‘누구나 달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달리기를 통해 정신까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 평범한 60세 러너의 마라톤 일지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달린다

오십 나이에 마라톤에 도전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이 운명(殞命)할 때 일반적으로 일생을 살면서 해본 것에 대해서는 그것의 성공여부를 떠나 후회하지 않으나 해보지 못한 것,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등에 대해서는 많은 회한(悔恨)을 남긴다고 한다.
나도 어떠한 것이든 그것이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라면 안 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자에게 그만큼 많은 성공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할 때마다 나는 나와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한다.
너, 왜 이 고생하면서 뛰고 있니?
너, 무얼 위해서 뛰니?
너, 오늘 포기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고 또 이루어낸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반대로 목표도 없고 도전도 없는 삶, 그것은 정말 무미건조한 삶일 것이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이며 러너인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은 그의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내가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달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런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런 힘든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를 늘 생각해 본다. 건강을 위해서인가, 목표에 도전하고 이룬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달리기 그 자체의 쾌감 때문인가. 모두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달리면서 내가 달리는 이유를 또 하나 찾아냈다. 바로 인간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 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아끼며 돕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임을 모든 사람이 깨달을 때 진정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레이스 도중에 만난 다정한 노부부, 외팔 달림이, 시각장애인, 외국인, 자원봉사자 등 모두 한결같이 더 없이 소중한 인격체로 각자 너무 멋있게 또 열심히 살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계속 달리기만 한다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 달릴 때의 고통과 함께 뛰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들과 동지적 관계에서 함께 달린다는 감동과 42.195km를 무사히 완주하였을 때의 희열 등 달리면서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무작정 그냥 달려서는 안 된다.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 글로 인하여 나는 계속 달릴 수 있게 되고, 누군가가 마라톤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할 수 있는 글들을 남겨야 한다. 나처럼 모르고 달리는 것보다는 내 글로 인해 미리 무언가 알고 준비하고 달린다면 훨씬 더 쉽지 않을까? 수도자들은 극도의 고행을 통해 득도를 한다. 마라토너들도 역시 참기 힘든 고통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달리는 목적이 아닐까?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글귀가 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당신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가 당신의 한계이고 그것이 당신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초상의 아름다움입니다.>
마라톤에서 만난 사람들

다 가슴에 소중히 담아야 할 내용들이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 자동적으로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이 중에서 내게 가장 적합한 자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치 바둑에서 정석은 알고 잊어버리라고 하듯이 운동에서도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얼마나 빨리 찾아 이를 자동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게 어찌 마라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인생살이에서도 다 필요한 내용들 아니겠는가?
마라톤은 4계절마다 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초가을 한강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다. 특히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주로에서 바라본 풍광은 올림픽대로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는 그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자연 속에서 한강을 달리고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다.
마라톤을 뛰면서 불현듯 칠순에 마라톤에 도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이창덕 선배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는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기계체조, 복싱, 축구, 테니스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 번째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기록이 1시간44분대의 믿지 못할 기록을 세우고 드디어 오늘 풀코스 완주를 함으로써 마라톤 데뷔전을 성공리에 마친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는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이제까지 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달리기가 최고야. 앞으로도 계속 달릴 거야.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이다.
이창덕 선배와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해 여름철에 있었던 마라톤 대회 때 일어난 일로 그날은 더위를 피해 오후 5시에 마라톤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이창덕 선배가 갑자기 오전에 전화를 해서 “함께 출전하지 못하니 혼자 열심히 달려라”고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대회에 참석하여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발 20분 전에 이 선배가 부인과 함께 대회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고는 동행한 부인에게 갑자기 오늘 50km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부인은 허를 찔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데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 선배는 부인의 얼굴을 살피더니 승낙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듯 그 길로 달릴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길었다고 한다. 마라톤 신청 때, 부인을 비롯한 가족의 반대가 워낙 심해 그만 아쉽게도 포기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철인(鐵人) 같은 분이시지만 칠순의 연세인지라 나로서도 50km 경주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어서 강하게 권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달릴 준비를 갖춘 채 일단 대회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 더운 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많은 건각을 보면서 그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으로부터 치솟아올라 도전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마라톤의 벽을 넘기 위해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아무도 말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선배는 그날 대망의 50km 마라톤 완주를 하게 되었다.

“벌써 고희의 나이에 50km 한 번, 42.195km 여섯 번, 21.0975km 일곱 번을 한 번도 기권하지 않고 완주했으니 나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어깨가 절로 으쓱거려진다. 대회마다 마의 벽인 후반에서는 인간 체력의 한계선을 넘나드는 반갑지 않은 고통이란 손님 때문에 내가 달리는지 남이 달리는지조차도 모를 정도의 마비 지경을 느끼곤 한다. 이 세상인가, 저 세상인가조차도 구분이 안 될 무념의 경지에 이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마음으로 오로지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는다.
더군다나 티 한 점 없이 선하고 착한 사랑하는 예쁜 나의 아내가 골인지점 통제요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최선을 다한 후 건강한 모습과 좋은 기록을 나의 가까운 여러분에게 선사하고, 결승점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따스한 아내 가슴에 포근히 안기련다.”
또 한 사람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81세 최근우씨를 소개하고 싶다. 그날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이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55세 때 중병을 앓고 난 후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후 이제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고 달리기 예찬에 열을 올린다. 그는 58세 때 10km를 35분에 달렸고, 60대에 서브-3을 했을 정도로 달리기 고수다. 79세 때인 2002년 동아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완주했으며 요즘도 매일 5km를 달린다고 한다. 최근우씨를 보면서 마라톤의 나이 한계는 몇 살일까를 생각해 본다.
또 한 사람 박영숙 여사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1년여 전인 작년 4월, 내 권유로 10km 대회에 처녀 출전해 완주했던 분이다. 그 후 몇 차례 10km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를 했고 오늘은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에 함께 참가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꾸준히 키워온 결과 오늘 하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환점 부근부터 박 여사의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박 여사는 오직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만이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여 km를 달려 그야말로 비몽사몽 그 자체였다. 그래도 잘 참고 달려서 결국 힘겹게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게 된 데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여사가 딸에게 ‘네가 UCLA에 입학하면 엄마가 하프를 완주하겠노라’고 약속하였는데 얼마 전 딸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엄마의 집념이 하프를 완주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어느 가을비 맞으며 치른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분도 한 분 계셨다. 그날도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예사롭지 않게 달리고 있는 선수를 보게 되었다. 그는 왼쪽 발목이 아주 불편한 사람으로 양발에 신고 있는 운동화도 제각각이었다.
지난번 대회에서는 팔이 불편한 사람이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달리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목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보면서 두 팔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의 “달리기는 위험한 운동이고 나에게 맞지 않아 못하겠다”는 달리기 불가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존경과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달렸다. 또한 대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시각장애인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치지 않고는 못 할 짓이 바로 마라톤이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선수들 얼굴은 모두 밝다. 자기가 좋으니까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서 하라면 하겠는가. ‘미쳐야 미치고 미치지 않고는 못 미친다’는 말대로 바깥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미친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도 모든 마라토너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린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바로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참선이요 철학이다

오늘 대회에 참가한 나는 몸이 너무 무거운 것을 느낀다. 지난번 대회에 참가할 때는 몸이 가벼웠는데 연습이 너무 부족하였다. 올 6월까지 상반기 평균이 월 140km인 데 반해 지난 7, 8월 두 달간은 고작 90km를 달렸으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야 혹서기에다 비도 많이 오고 핑곗거리를 찾자면 한이 없지만 아무튼 연습부족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하루다.
몸이 무겁다고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저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결국 골인지점이 보인다. 골인지점이 보이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게 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순간만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하늘을 나닐 듯이 달린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바로 이 순간을 맛보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몸을 견디며 열심히 달렸던 것 아닌가.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뿌린 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도저히 뛸 수가 없어 ‘걸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치 휘발유가 다 떨어진 자동차가 ‘푸식 푸시식’하면서 서버리듯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현지 지리도 잘 모르고 주최 측에서 제공한 코스 높낮이만 철석같이 믿고 그 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예상 밖 오르막과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오르막을 만나게 되면 아예 달릴 엄두가 안 나 걷게 된다. 처음 걷기가 힘들지 한 번 걷기 시작하면 언덕만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걷게 된다. 힘 있을 때 같으면 박차고 오를 정도이건만 체내 모든 에너지가 다 고갈돼 그럴 힘이 없을 때는 단 한 걸음도 뛰기가 어렵다.
마라톤은 그야말로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실력을 충실하게 쌓는 것은 기본이고 그날그날의 기온, 습도, 풍향 등을 고려해 레이스를 탄력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라톤처럼 단순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경기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나는 대회 때마다 그때에 맞는 화두를 정해 정신을 집중하곤 한다. 나는 수능시험을 볼 딸 준영이도 생각해 보고 군에 가 있는 아들 준일이의 건강과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기도 하며 그렇게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족 간의 애틋한 일들을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한결 정신이 맑아진다.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늘 새로운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레이스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때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 1968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앰비 버풋(Amby Burfoot)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나는 달리기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실패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달리기에서는 속도나 금메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어려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사실 무한하다. 절대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진정 승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가는 길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목표를 이루는 법은 없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승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해볼 것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자기에게 적합한 속도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속도보다 빨리 가는 것은 물론 어렵지만 그렇다고 천천히 달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의 많은 연습과 훈련이 모든 자율신경을 통해 체내에 입력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參禪)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갑자기 근육이 경직되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만 저절로 서버리는 경우가 많다. 쥐가 나는 경우다. 쥐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경우 ‘아! 이래서 마라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그간 너무 자신을 과신한 것에 대한 회한이 가슴 한가운데로부터 스며 나온다. 과연 내가 마라톤을 진정 겸손하게 대했나. 마라톤을 할 만큼 연습이 충분했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때면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걷기조차 힘들 때에는 스프레이를 찾아 뿌려보고, 갓길로 나가 스트레칭도 해보고, 뒤로 걷는 것이 좋다는 말에 따라 뒤로 걸어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 그럴 때 회송차량이 지나간다면 타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차도 안 오고 또 기어서 가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걸으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연도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게 된다. 한번은 내 배번까지 부르며 파이팅을 외치던 한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에 끝까지 완주한 적이 있다.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마라토너들처럼 직접 달리는 것도 즐겁지만 자원봉사는 더 행복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달리기에만 참가하고 한 번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왜 달리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달리기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다.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이루 꼽을 수 없지만 그중 건강과 친구가 다른 어느 것보다 앞설 것이다. 실로 건강해졌고, 또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할 때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하라고 한다. 달리는데 덜 지루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은 마치 전생에 무슨 인연이나 있었던 것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 단지 달리기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이웃사촌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마라톤은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여기에 만용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마라톤은 진실된 삶의 성숙한 성스러운 행위이다.” 뉴욕마라톤 우승자인 케냐 출신의 더글러스 와키후리의 말과 같이 마라톤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종교만큼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마라토너를 마스터(master), 러너(runner), 조거(jogger)로 구분해 놓았다. 발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 힘들지 않게 달릴 때를 마스터라 하고, 발과 마음으로 달리는 사람을 러너, 발로만 달리는 사람을 조거라고 표현한다. 나는 지금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리고 있을까?
1930년대 미국의 1마일 경주 선수 글렌 커닝엄(Glenn Cunningham)은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다른 선수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적이 아니다. 뛰어넘어야 할 대상은 자기 안에 있다. 머리와 가슴에서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또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마라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행하고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