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2.

2만5000원의 축의금 - 박시호의 행복편지



2만5000원의 축의금


  얼마 전에 아들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이 오셔서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축하 화환도 많았고 하객도 많았습니다. 결혼식에는 하객이 많아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잃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축의금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의 축의금이 2만5000원이었습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2만원이면 2만원이고 3만원이면 3만원이지 2만5000원, 이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그 친구가 이 정도로 적은 축의금을 낼 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정리하는 과정에서 잘못했나? 하기야 가끔은 실수로 빈 봉투를 내는 경우도 있고, 봉투에 이름을 기재하지 않아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축의금으로 2만5000원을 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사는 친구가 아닌데… 그동안 만남이 다소 소원했지만 그래도 힘들게 산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렵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축의금 얼마나 냈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서 그러는데 2만5000원 냈어?’”라며 어렵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피로연에서 그 친구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어색한 상태로 전화를 끊었고 제 기분은 영 좋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일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그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그 친구의 소식을 물었으나 아무도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다른 친구의 주선으로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뜻밖에도 지방에서 조그마한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알려진 기업체의 임원으로 잘나가고 있었는데, 최근에 실직하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 결국 서울을 떠나 지방 도시에서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대기업 임원의 돌연한 실직
  
  부인은 통닭구이를 만들고 이 친구는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처음 하는 일이라서 모든 것이 서툴고 힘이 들어 부인의 손은 기름에 데어서 상처가 나 있었고, 이 친구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몸이 불편하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예전에는 이 친구가 모임에서 밥도 많이 사고 술도 많이 사서 아주 인기가 좋았고,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없더니 하는 일들이 힘들어지고 이런저런 사업을 새로 시작하여도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망해 가면서 가족관계도 나빠지게 되니,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여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칠 동안 나는 왜 나만의 입장에서 그 친구를 바라보았을까요? 왜 축의금이 적다고 그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을까요?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억지로 “야!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하자”며 소매를 잡아끌어 가까운 술집으로 가서 그동안의 경황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다녔던 잘나가던 회사에 어느 날 2세 경영인이 등장했고, 그후 아버지 세대에서 함께 일을 하던 임원들에게 떠나 달라고 하더랍니다. 난생 처음으로 당하는 실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내가 왜 이렇게 돼야만 하지? 그동안 실직이라는 것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나의 일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는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매일 아침 밖으로 나와 거리를 헤맸었답니다. 그렇게 갈 곳이 많더니 실직을 하고 나니 단 한 군데도 찾아갈 곳이 없더랍니다. 한강 다리를 수도 없이 걸으며 죽음을 생각해 보았답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지. 그런데 남아 있는 가족은 어떡하지?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나 없이 어떻게 살까?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아직 아이들이 공부할 기간도 많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 끝낼 수는 없는데, 무슨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방법이 없었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내가 좋아 친했던 것이 아니라 내 직위 때문에 친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더랍니다. 세상인심이 이렇게 야속할까 하는 생각만 들더랍니다. 이런저런 사업을 해 보았지만 경험도 없고 남에게 친절한 모습으로 인사한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힘들어서 제대로 할 수가 없더랍니다. 돈만 다 날리고 결국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통닭집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 본 적도 없지, 남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 본 적도 없지, 남에게 먼저 다가간 적도 없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배달이 늦었다고, 맛이 없다고, 비싸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욕을 들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비로소 세상을 새로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왜 나는 50이 넘도록 세상을 모르고 살았을까, 왜 남에게 베풀지도 않고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의 삶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남에게 못된 짓 한 것을 지금 돌려받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이젠 어떤 일이 닥쳐도 헤쳐 나갈 자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왜 이런 자신감이 그동안 없었을까, 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너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식 축의금 2만5000원은 두 식구가 하루 종일 번 돈이었다고….
  
  
  온종일 통닭 팔아 번 돈은 얼마일까
  
  나도 예전 같으면 많은 돈을 축의금으로 냈고, 2만5000원이라면 나도 욕을 했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허례허식 아무 소용 없고, 어느 날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인생에서 실속 있게 참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고…. 너무 적은 축의금이나,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큰돈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면서 친구의 우정을 돈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정으로 판단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저는 친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모진 말로 친구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이 된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저처럼 나이만 먹었지 마음이 성숙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제 친구는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고 있지만 마음만은 성숙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 친구는 반드시 이겨낼 겁니다. 너무나 큰 시련이 그를 더욱 성숙해지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누구에게나 고통과 시련이 찾아올 거라는 것을…. 그것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데, 모르고 지내다가 막상 닥치고 보면 우왕좌왕하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생하는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을 그 친구 부인에게 모두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이 친구를 통해 얻은 교훈이 너무 값어치 있었고 내 친구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친구가 그걸 보고 뭐하는 거냐면서 야단을 쳐서 되레 더 민망해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 그 친구의 축의금 2만5000원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이 많아 돈의 귀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단돈 1원이 얼마나 귀중하고 또한 이 돈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축의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욕을 들으면서 부부가 함께 노력하였을까요? 남편 한 사람의 실직으로 온 식구가 산업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가족이 얼마나 많을까요?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는데 어렵다고 포기하면 일어날 수 없게 되지요.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 모두가 힘들어하는데 이젠 나만이 아닌, 그리고 우리 가족만이 아닌 주변 사람들 서로가 감싸 주고 아껴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친구 꼭 성공할 겁니다. 저는 그 친구를 믿고 있거든요. 그 친구는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자신감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못 이길 정도로 어려운 시련은 주지 않는다고 하거든요. 그 시기만 잘 넘기면 더 좋은 세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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