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2.

오빠 제삿날 - 박시호의 행복편지



오빠 제삿날


  어제 ‘자시’이면 어젯밤에 속하나요? 오늘 새벽에 속하나요? 오빠 제사였답니다.
  
  저보다 네 살 위인 오빠 부부는 아홉 살, 열한 살 된 두 딸을 남겨 놓고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나 버렸지요.
  
  고모인 저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성장한 두 딸 아이(조카)가 이제 스물아홉, 서른하나가 되었어요. ^^ 오우…. 그러고 보니 딱 이십년 되었네요.
  
  오빠 딸로 9년, 제 딸로 20년을 살아온 두 녀석은 너무 바르고 예쁘게 잘 커서, 그저께 어버이날은 오빠 묘에 다녀오더니 어젠 자기네들 둘이서 제사 음식을 다 장만해 보겠다고 하데요. ^^ 
  
  해마다 아들 제사상 앞에서 두 손녀딸이 바르게 잘 자라길, 그리고 그 손녀딸을 키워 주는 당신의 막내딸이 건강하길 기도하듯 중얼중얼 읊조리시던 아흔하나인 꼬부랑 제 어머니는 올해는 기운이 달리는지 그나마도 못하고 처연한 표정으로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앉아 계셨어요.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 지나 놓고 보면 지당한 말이지만 그 시절 속에선 얼른 세월이 흘렀으면 했던 간절함 속에, 녀석들이 사춘기를 혹독하게 치렀었지요. 함께 허우적거리며 아파하며 그마저 ‘업장 소멸’이라 명하며 이만큼 업을 키워 갚았으니, 이만큼 더 보람차다고 나를 담금질했던 시절 속에서, 그럼에도 내가 진정 아이들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면 아이들이 그 사랑을 기필코 알아주리라 믿고 또 믿었더니, 그 몇 년 후에 내 배 아프지 않고 생긴 선물 같은 큰 딸(조카)이 그러데요. “엄마, 참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를 통해서 진정 참는 것이 뭔지를 배웠어. 그리고 기다림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도 깨달았어. 엄마, 정말 사랑해.” 
  
  그랬었지요. 정말 힘이 들 때에도 그래도 내가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오빠를 만나면 오빠가 칭찬 듬뿍 해 주실 거야. “얘야, 수고 많았다. 그리고 기특하고 고맙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줄 거야 하며 견뎠는데, 너무나 잘 자라준 녀석들은 이제는 다 큰 의젓한 어른이 되어 오히려 나를 보호해 주고 돌봐준답니다.
  
  
  오빠의 두 딸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줄이야
  
  그렇지요. 제가 몸이 많이 아팠을 때 제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저를 돌봐줬던 두 녀석. 어찌 저에게 큰 선물이 아니겠어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주변의 무정한 사람들이 덩그러니 남은 두 녀석을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을 때, 이 두 아이를 내 배 아프지 않고 생긴 내 딸로 생각하며 기필코 훌륭하게 잘 키워 내리라. 굳은 결심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꺼이 껴안았었지요.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요. 저는 지금 두 녀석에게 너무 감사해요. 이 두 녀석이 내 인생의 축복이라 일컬으며 내 인생의 이 특별한 보너스를 정말 감사하다고…. 살아생전 애주가였던 오빠에게 술 한 잔 올리며 어머니 대신 제가 기도하듯 중얼중얼 읊조렸습니다.
  
  오빠가 준 선물, 오빠가 나에게 준 이 특별한 보너스…. 정말 고맙다고요.^^ 부끄럽습니다.
  
  감동이랄 것도 없는데…. 그냥 오빠 제사를 지낸 그날 아침, 행복편지 읽고서 제 감회를 몇 자 적어 본 것인데 민망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 
  
  오빠 장례식장에서 문상 온 친척들이 아이 둘을 고아원에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 정말 자존심 상했었지요. 그리고 빳빳하게 고개를 드는 오기. 내가 정말 사랑했던 내 피붙이가 고아원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리고 그들에게 보란 듯이 훌륭하게 잘 키워 내리라, 굳게 다짐했었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기도 속에서 너무 감사하게 잘 자라 주었고 지금 녀석들은 제 든든한 재산이 되었어요. 함께 영화관이나 공연장엘 가더라도 엄마가 어리버리 시원찮아 보이는지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게 보호하느라 꼭 보디가드처럼 에워싸고 보호하며 들어가는 모습이라니. 제가 녀석들과 함께 다니면 마치 영부인이라도 된 기분이라니까요.^^ 그러나 어떨 땐 길가다가도 내 뒤를 쫓아오면서 “엄마! 아줌마처럼 걷지 말고 똑바로 아가씨처럼 걸어야지! 무릎 더 붙이고, 허리 쭉 펴고 걸어!” 하며 관리 감독을 한다든지 화장하기 귀찮아 민낯으로 외출할라치면 화장하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외출하라고 마구 나무라고 간섭하고.^^ 마치 사감 선생님 같아요. 사랑스러운 사감 선생님.^^ 그럴 땐 나를 다듬어 주는 녀석들의 애착에 참 뿌듯한 기분이지요. 예전엔 내가 아이들을 다듬어 줬었는데 말이죠.^^
  
  우리 두 아이들과 사이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언젠가 큰딸(조카)이 저에게 그랬어요. “엄마, 생각해 보면 동생들에게 너무 고마워. 나를 잘 따라 줘서.” 
  
  
  자식 넷 가진 부모가 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우스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네요. 옛날,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휴일날 어머니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올 일이 있었어요. 저는 큰 녀석에게 동생들 잘 챙기라고 당부를 하고 아침 일찍 어머니랑 함께 외출했다가 밤에 돌아와 보니 네 녀석이 깜깜한 거실 한가운데서 천장 바라보며 일자로 나란히 누워 있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너희들 왜 이러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제 아들 녀석이 그래요. 
  
  “으응, 누나가 움직이면 배 꺼진다고, 가만히 누워 있으래요.” 아이고, 큰 녀석이 동생들 밥 차려 주기 귀찮아서 그랬다나요.^^ 우린 요즘도 큰 녀석 놀린다고 그 얘길 하면 얼굴이 빨개져서 이젠 제발 그 사건은 잊어 달라고 막 민망해해요.^^
  
  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힘든 과제로 시간에 쫓기고 있을 땐 세 놈이 모두 학교 작업실로 달려가서 모델 만드는 것 밤샘작업 하면서 도와주고 몸살이 나서 합동으로 끙끙대며 앓아 눕고…. 성탄절이나 가족들 생일 때에는 넷이서 한꺼번에 마트에 몰려가서 시장 봐다가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킥킥대면서 모의들을 해서는 어른들에게 서프라이즈를 선물하는 등…, 제 두 아이들에게 너무나 근사하고 든든한 언니, 누나들이 되어 있는 녀석들이 제가 어찌 고맙지 않겠어요.
  
  나름 다소 냉소적인 녀석들을 긍정적으로 껴안고 이해해 주는 내 두 아이들의 맺히지 않은 선한 심성들도 관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큰 녀석이 저에게 그러데요. 제가 큰 조카 녀석 손을 꼭 쥐고 고맙다고 그랬을 때 말이지요. 녀석들 사춘기 때 동생들에게 고약을 막 부려도 동생들은 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이해하고 껴안아 주었으니까요.
  
  네. 지나고 보니 아무리 힘든 시절도 곧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시간이 다 해결해 주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성심(誠心)이라고 생각해요. 성심으로 임하니 모든 것이 잘 풀리더라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제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제가 자랑하고 나설 일도 아니지요. 누구나 다 자기 조카를 고아원에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한 일인걸요. 그럼요. 너무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 주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지요. 행복, 멀리 있 것이 아니고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 행복편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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