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저는 출근하기 위해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집사람은 싱크대에서 뭔가를 씻고 있었지요. 늘 아침이면 틀어 놓는 라디오에서 웨스트라이프가 부른 ‘My Love’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더군요. 우리 큰아이가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우리 큰놈은 2년 전 이맘때 갑작스런 사고로 대학 2학년의 꽃다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지요. 큰아이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또 부르기도 꽤 잘 불렀습니다. 우리 아이가 샤워할 때마다 욕실에서 노래를 크게 불러 밖에서도 들리곤 했는데, 그때 ‘My Love’도 잘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누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샤워 중에 노래를 부르는 시기가 인생에서 행복한 시기라고…. 그렇습니다. 저 역시 생각해 보니 옛날 한때는 샤워 중에 노래를 흥얼거리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사람도 아이가 좋아했던 노래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집사람은 싱크대에서 등만 보인 채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저는 고개 숙이고 넘어가지 않는 밥만 몇 숟가락 억지로 밀어 넣었습니다.
며칠 전 큰아이의 생일날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집사람은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조기를 굽고 찰밥을 지어 한 상 그득 아침상을 마련하였지요. 집사람과 나, 그리고 둘째놈이 주인공 없는 생일상을 받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꾸역꾸역 밥만 먹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상에 없는 아이의 생일상을 준비하는 어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차마 밥이 넘어가지 않더군요. 아이는 가도, 아이의 흔적은 도처에서 불쑥불쑥 뛰어나와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군요. 아이가 좋아했던 노래나 음식이나 책들에도, 집 앞의 모락산 등산길이나 동네 산책길에도 아이는 어디에나 남아 있어 저에게 말을 걸곤 합니다. “아빠, 잘 있지? 요즈음 어때요?” “그래, 문아, 너도 잘 있지? …” 다시 한번 ‘아빠’ 하고 부르는 우리 아이 특유의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허허, 얼마나 좋을까요. 서둘러 밥을 먹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합니다” 한마디 말만 남기고 사무실로 왔습니다.
하느님은 고통 없는 날들, 슬픔 없는 웃음, 비가 없는 해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날들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 눈물에 대한 위안, 그리고 길을 비춰 줄 빛을 약속하셨습니다. 좋은 아침에 별로 행복하지 않은 신변 이야기를 중언부언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댓글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그 자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갈 경우에는 그 상흔이 오죽하겠습니까? 아침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모두가 그런 일이 없는 평온한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하늘의 정해진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죄송합니다. 행복편지 가족 중에서도 이런 아픔을 가지고 계신데, 저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분개하곤 합니다. 제가 사는 세상은 사치스러운 생활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어찌하면 그분들께 위로가 될는지~ 오늘 사연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편지 너무 가슴 뭉클하네요. 인간의 삶 속에는 항상 뜻하지 않은 행복과 불행이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크기로 오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지요. ―마음이 짠하네요. 글 보낸 분에게 마음으로나마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제가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집안 일 때문에 요즈음 마음이 너무 심란하고, 바깥일도 머리가 복잡해서, 심적으로 디프레스가 꽤 심한데…. 내가 처한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네요. 글 보낸 분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것이네요. 많이 느끼고 갑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심히, 그리고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하면서 살아야겠지요. ―제 친구도 7월 말에 36살 난 아들을 앞세웠어요. 그 친구는 처음에 친구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혼자서 울고 있었는데, 그래도 남편이 옆에서 ‘그러지 말고 친구들한테 이야기도 하고 하면 더 나아질 거야’라고 하고 있을 때, 마침 한 친구가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하는 중에 이 친구가 울컥 하는 바람에 ‘너 왜 그래’ 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어 친구들 모두 연락하여 만나고 하였어요. 그런데 정말로 뭐라고 위로를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남편 앞세운 친구가 너는 그래도 옆에 남편이 있잖아,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아들 둘은 아직 공부도 더해야지, 너는 나보다 낫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지? 그래도 아들이 결혼을 안 하고 간 것도 위안으로 삼아라 등등…. 위안을 하지만 어떤 말이 위안이 되겠어요?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 부부께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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