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5월호
박시호의 행복편지
눈물의 하얀 와이셔츠 / 한 남자의 고백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을까?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여보! 이리와 봐!”
“왜요?”
“와이셔츠가 이게 뭐야, 또 하얀색이야?”
“당신은 하얀색이 너무 잘 어울려요.”
“그래도 내가 다른 색깔로 사오라고 했잖아!”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얀 와이셔츠 말고 색상 있는 와이셔츠로 사오라고 몇 번이고 일렀건만 또다시 하얀 와이셔츠를 사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와이셔츠 다시 가서 바꿔와.”
“미안해요. 유행 따라 색깔 있는 와이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당신한테는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나 참…”
출근은 해야 하는데 몇 달째 계속 하얀색만 입고 가기가 창피했습니다.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신랑을 어떻게 보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아내는 방바닥에 펼쳐 있는 하얀 와이셔츠를 집어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얀색 와이셔츠의 소매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 지금 우는 거야?”
“……”
“신랑 출근하려는데 그렇게 울면 어떡해.”
“저… 이 옷… 그냥 입어주면 안 돼요?”
“왜 그래?”
“아니에요. 어서 출근하세요.”
아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좀 심했나 싶어, 아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눈물 젖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삐리릭 삐리릭!”
점심 식사시간, 마지막 숟가락을 놓자마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정현주님께서 보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와 확인을 해보니 세 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두 개는 광고 메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아내가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당신 화나게 해서 미안해요. 아직 당신한테 얘기하지 못한 게 있는데요. 말로 하기가 참 부끄러워 이렇게 메일로 대신해요.”
무슨 얘기를 할지 조금은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여보,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부러워했던 게 뭔지 아세요? 옆집 빨랫줄에 걸려 있는 하얀 와이셔츠였어요. ‘우리 아버지도 저런 옷을 입고 회사에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버지요, 단 한번도… 단 한번도… 와이셔츠를 입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와이셔츠하고는 거리가 먼 환경미화원으로 줄줄이 셋이나 되는 우리 가족 뒷바라지에 새 옷 한 벌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다 가신 분이세요.”
지금까지 장인어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그래서 전 당신 만나기 전부터 이런 결심을 했지요.”
난 꼭 하얀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지.
결국은 제 소원대로 당신과 결혼을 했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당신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얀 와이셔츠를 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화내서가 아니에요. 이제야 알았거든요. 하얀 와이셔츠를 입어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분인지를요. 늘 조금 굽은 어깨로 거리의 이곳저곳을 청소하러 다니시는 나의 아버지야말로 하얀 와이셔츠만큼이나 마음이 하얀 분이라는 걸요…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내가 하얀 와이셔츠만 사오는지,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줄 알아? 아침에 당신이 와이셔츠 소매에 흘린 눈물자국 위에 입맞춤하고 있다고.
사랑해. 진심으로.”
※ 이 글은 행복편지 가족 서미영님이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열성인자만 물려받았는지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 뒤처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 그래서 항상 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난 다른 사람에게 소개될 때에도 내 이름으로 소개되기보다는 ‘누구의 형’이라는 식으로 소개되곤 했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이 시절마저도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 중 최악, 그 자체로 다가온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난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친구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글쎄…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 다니지만… 내 옆에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하긴 볼품없는 내게 다가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역시 용기가 없어 애만 태우다가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임에서의 단체 활동으로 봉사 활동을 나가게 되었다. 조그마한 교외에 있는 요양원. 주로 이제는 더 이상 차도가 없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 식물인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2층 206호실. 내가 맡은 담당환자가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할아버지 할머니겠지. 난 206호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실내. 환한 병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조용했다. 그 흔한 TV도 없었고 라디오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니었다.
조그마한 소녀…
긴 머리를 땋아 한쪽으로 늘어뜨린 소녀가 누워 있었다. 내… 내가 잘못 들어온 건가… 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다시 확인을 해보았다. 206호. 206호. 206호.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맞는 병실이었다. 순간 밖에서 들어오는 한 사람.
어서 오세요.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 아이를 보살펴줄 사람이군요. 아… 전… 잘 부탁해요. 저 아이의 어미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엉겁결에 나도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침대 앞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식물인간이었다. 10여 년 전. 저 아이가 열 살 때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몸의 상처는 다 치료가 되었지만 그때 이후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10년 전 열 살이라면… 스무 살… 하지만 아직도 중학생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매우 지쳐 보였다. 1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그러며 잠시 눈 주위를 훔쳤다.
다음 날… 찾은 병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빛이 너무 밝다. 난 창가로 다가가서 블라인드를 조금 내렸다. 그러고 다시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관을 통해서 들어가고 관을 통해서 나왔다.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이제야…
내가 왜 이 병실로 배정받았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앉아 있으라… 이거였군…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계속 잠만 잘 뿐이었다.
어머니가 말하길… 가끔 눈을 뜰 뿐이며 대다수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 했다. 결국 내가 할 일은 이 병실의 물건이 도둑맞지 않게 지키는 것. 그 역할밖에는 없었다.
다음 날. 난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난 책을 한 권 들고 병실로 갔다.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 문득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을 본 것은… 비로소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녀는 불안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안심했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난 들고 간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난 다른 책 한 권을 가지고 병실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가 일찍 나와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연예인 이야기였다.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도 간단하게 인사를 받으시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야기를 알아들어요? 난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알아들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바쁜 일로 곧 나갔고 또 병실에는 그녀와 나밖에 남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책을 폈을 때 문득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그녀의 하얀 손이 보였다. 난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아 이불 안으로 넣어주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깨어 있었다. 순간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그냥 웃어보였다.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책을 다시 펴들었을 때… 난 내 심장이 무척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내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다. 결국에는 휴게실로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다음 날. 병실에 들어가자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바보 같은 짓인 줄 알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날 보더니 웃는 것이었다. 웃었다? 식물인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 무슨 일이냐 물어보았다. 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었다.
왜… 왜 그런 거죠?
당신도 느꼈군요. 저 아이가 웃는 것을…
느끼다니요? 그럼 정말로 웃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다시 어머니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저도 몇 번이나 보아서 의사 선생님께 말했지만… 제 착각이랍니다. 저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두 눈밖에 없어요. 하지만 잘되었네요.
당신도 저 아이가 웃는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저 아이와 잘 통하는 것 같군요 하며 웃어보였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난 그녀가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다음 날. 이제는 병실을 찾는 것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동화부터 시작해 전쟁 소설까지 난 닥치는 대로 읽어주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자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오늘은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깜빡 가져올 책을 놓고 와버렸다. 병실에 들어가자 이미 그녀는 깨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당신을 기다리느라 30분 전부터 깨어 있었다며 웃어보였다.
난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대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읽었던 책 이야기, 친구 이야기, 시골 이야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고 밤늦게까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이미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녀도 잠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새벽 3시.
난 그녀가 무척 편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이야기… 열등감을 느끼는 나… 여자친구가 없는 나… 이런 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용기가 없어 그냥 보내버린 사람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누가 알게 될까 봐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 스스로 하고 있었다.
왜일까… 그녀는 식물인간이니까…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하는 것인가? 난 밤새도록 그녀에게 넋두리를 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 내 뺨에 따뜻한 것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손이었다. 그녀는 계속 깨어 있었다.
당신이 올려놓은 거예요? 난 깜짝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할 리 없었다. 그녀는 계속 누워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제가 밤중에 실례를 한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난 병실을 뛰쳐나왔다. 꼴 좋구나. 이 녀석아… 밤새도록 넋두리를 하더니… 난 집으로 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난 늦게야 병실을 찾았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병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그녀.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제는 일찍 들어가셨더군요.
네… 사정이 있어서… 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날이네요… 네. 저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듯했는데. 아쉽네요. 나는 다시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애써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당신이 오고 난 후부터 저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지금까지는 저런 일이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네에…
난 언제나처럼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저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지금까지 고마웠고요… 어제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난 또 한 번 그녀의 웃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용서했다는 뜻인가… 나도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다음 날. 난 하루종일 뭔가에 쫓기는 안절부절못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모두 괜찮으냐는 질문뿐이었다. 뭔가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를 빼먹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덜렁거리는 녀석. 또 뭔가를 빼먹고 헤매는군. 바보! 바보! 바보!
그러기를 일주일. 난 원인을 찾아냈다. 그 요양원, 그곳에 뭔가를 놓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책을 놓고 온 건가? 아니면 내 물건이라도?
다음 날.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척 놀라는 듯했지만 난 인사를 하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잊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배고프지 않았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이 내겐 둘도 없이 중요한 시간이었기에… 나는 그 후로 계속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도 언제나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고마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남으면 무슨 책이든 읽어 이야기할 주제를 찾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난 그날 밤도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해 줄 때면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난… 그러니까… 난 안절부절못하며 더듬거렸다. 오늘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꼭 해야만 했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하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당신을 좋아해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좋아한다는 말.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던… 하지만 난 그녀에게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순간 그녀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 움직였어? 난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그녀에게 말을 했지만 기대하지 말라며 의사를 부르러 나갔다. 곧 의사가 들어왔고 진찰을 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노’였다.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닙니다.
그렇게 일주일 후… 그녀의 병실을 찾아갔을 때 그녀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난 간호사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어보았다. 그녀는 매우 놀라 더듬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어제저녁 손가락을 움직였어요. 닥터도 확실하게 보았고요. 그래서 큰 병원으로 옮겨갔습니다. 난 병원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내고 단숨에 달려갔다. 요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 그 사이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어머니는 날 보자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 아이가 차도가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덕입니다. 근육이 되살아나고 있대요. 이제 움직일 수 있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겨우겨우 그녀의 어머니를 진정시킨 후 그녀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언제나 같은 그녀…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다.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움직일 수 있대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울고 있었다. 정말…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구나. 난 그날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병원은 요양원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난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가 그녀를 만났다.
그러기를 6개월, 그녀는 정말 큰 차도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움직일 수 있다니… 정말이지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이제는 곧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겠구나. 그녀도 다른 정상인과 같이 되면… 나를 만날 일은 없게 될 거야. 나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겠지. 6개월 전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때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뻔하겠지. 나 같은 사람… 관심없는 것은 당연해. 그 후로 난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전과 같은 허탈감….
몇 달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찾아가고 싶지만 그녀가… 날 기억하고 있을까? 잊어버리자. 이젠 끝난 일이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문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가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건네오며 다가왔다. 어찌해야 할까. 지금까지 찾아가지 않은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찾아오시지 않아서 제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간 사정이 있으셨겠죠. 저와 아이가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씩이라도 들러주세요. 어찌되었건 아이의 은인이니까요. 우연일지도 모르는 이 일을… 그녀의 어머니는 내 덕으로 알고 감사했다. 계속되는 그녀의 말. 그녀는 지금 굉장한 차도를 보여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저… 혹시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당신이 처음 올 때부터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그날 밤 내가 했던 모든 말, 내가 했던 고백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말… 예상하던 바였다. 그럼, 꼭 한 번 들러주세요. 그녀의 어머니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난 텅 빈 골목에 혼자 서서 그녀의 어머니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난 커다란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갔다. 얼마만인가… 그녀를 보는 건. 병실에 찾아가자 그녀의 어머니가 홀로 앉아 있었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인사를 건넨 후 그녀를 찾자 재활치료 중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간 재활치료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많은 환자가 보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손으로 가리켜보았다. 금속으로 된 지지대에 몸을 싣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보였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옷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기는 것을 쉬지 않았다. 마치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그녀는 위태위태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서 있었다. 난 그대로 돌아가려 했다. 이제 건강한 모습을 봤으니…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툰 발음이었다. 외국 사람이 부르듯…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였다. 그녀가 날 보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고는 내게로 걸어왔다.
서툰 걸음… 그런 걸음으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면서 내게 걸어왔다. 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정든 아버지를 만난 듯… 결국 내 이름을 부르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원망하며 그녀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환자들과 간호사는 그녀를 위해 길을 내주었고 모두 그녀를 주시했다. 그들의 시선은 점차 내게로 옮겨왔다. 여전히 울먹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힘을 내요. 난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힘들게 다가온 그녀는 쓰러지듯 내게 안겼다. 곧이어 주변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 난 그녀를 안고 천천히 앉았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계속 말을 했다.
에… 에… 차자오지… 아… 안았… 써요…
원망하듯 말하는 그녀,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이 날 싫어할까 봐… 난 당신이 떠나버릴 것이 두려워 찾아오지 못했어요.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며 말했다.
나… 지… 지금까지… 다… 단신을 차자가려고 열심히 했어요.
난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때 말… 기… 기이억 하고… 이… 이써요…
그녀는 계속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을 이었다. 내 귀에는 그녀의 말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 나도… 좋아… 좋아해요. 이… 이말 하고… 시… 시펐… 어요…
그녀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난 그런 그녀의 젖은 등을 토닥거리며 달랬다. 내가… 내가 왜 쓸데없이 걱정을 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난 울먹이는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리고… 정말 좋아해요. 사랑한다는 말… 할 자신이 없었다. 제길 난 이런 순간까지 용기가 없는 것인가. ‘사랑해요’ ‘사랑해요’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좋아한다’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녀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더 이상은 놓쳐버리고 싶지 않기에… 떨어지고 싶지 않기에…
그… 그럴 때는… 사라… 사랑이라느… 는 말을 써도 조… 좋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난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
※ 이 글은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충남 모 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재학 중인 학생의 글입니다.

어느 시인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지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이 시,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 가족의 삶을 적절하게 표현해 놓았을까요. 시인들은 우리보다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나 봐요. 마치 현미경으로 우리의 생활을 엿보기나 하는 것같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에서 식물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가련한 줄기를 바람에 맡기며 바람 부는 방향으로 흔들립니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비바람도 그치고 어느새 밝은 햇살에 꽃들을 피우게 되지요.
저는 세 명의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첫째 아들은 모대학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 딸은 외국어 고등학교 3학년이며, 셋째 아들은 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빠는 2년 전 자영업을 하면서 그런대로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는데 어느 날 납품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함께 부도를 맞는 바람에 은행 빚은 물론 사채 빚까지 얻게 되었죠. 아빠는 그 후 어디론가 떠나버려 지금은 가끔 연락만 줄 뿐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인의 도움으로 월세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곱게 자란 꽃들처럼 우리 식구는 참으로 행복하게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사업 부도로 인하여 나와 우리 아이들은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고 있고, 특히 둘째 딸은 외국의 유명 여성 지도자들 연설을 TV를 통해 보고 나서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고 꿈을 꾸며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미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 늘 가슴만 졸이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노트에 깨알같이 목표를 적어가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꿈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 꿈이 간절하다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주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흔한 과외공부, 학원 하나 제대로 다니지 못하면서도 늘 학교에서 상위권을 맴돌고 있고, 영어도 변변한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면서 좋은 점수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 승리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늘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에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대견함도 크지만 엄마로서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힘이 드는 여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운다는 것은…. 저는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만 이런 형편에 행복한 미래의 꿈이 접어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동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고운 아이들을 얻었을 때, 두 번째는 그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른 성적이 좋아 주변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것….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부모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럴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바로 우리 가족이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 겁니다. 아빠의 부도 이후 우리 가족은 어려운 생활고에 지쳐 쓰러지기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제 몸은 가면 갈수록 말라가고 처음엔 몸과 마음이 지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이 고통은 위암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을 주십니까? 그동안 저는 아이들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만 하였는데 결국 저에게 주는 선물이 고작 이런 것입니까? 신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이 세상의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신이 왜 우리에게만 이런 큰 시련과 고통을 주시나요?
이어령 교수님도 시력을 잃어가는 딸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로서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면서 본인의 지식과 돈이 딸을 구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는데 이 세상에 이와 같이 부모가 자식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왜 신은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하는 원망으로 신을 욕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신이 계시든 계시지 않든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누군가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병이 무섭고 또한 삶이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미당 서정주님의 ‘푸르른 날엔’이라는 시가 떠오르는군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게 바로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비록 어렵고 힘들어서 남의 힘을 빌려야 할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푸른 날이 오겠지요. 지금 상황에서 세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마음엔 늘 아이들 앞날에 대한 희망과 현실이 주는 시린 아픔이 공존합니다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 보렵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에게도 눈이 부신 파란 하늘이 보이겠지요.
소란스럽고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남보다는 자기만을 위해 아등바등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눈 한번 돌려 아직은 가녀린 연초록 나무에 햇살 같은 관심의 눈빛 한번 주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고 부족한 게 많지만 스스로를 갈고 닦아 우리나라를 위한 작은 초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하여 상대적, 절대적으로 빈곤감 속에서 꿈을 키우기 위해 허덕이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항해할 수 있도록 작은 어깨 위에 힘을 실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흰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목련은 보송보송한 솜털 덮개를 한 채 찬란하게 피울 꽃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행복이 많은 사람에게 배달되어 우리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그런 가족이 없기를 희망해 봅니다.
※ 이 글은 행복편지 가족 김희자님이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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