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호의 행복편지' _ <25> 7살 편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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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양복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눕는 순간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이 이불 속에서 퍼져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들을 붙잡아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순간 아들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고 해서 보일러 온도를 높여 데어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 봐 이불 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이를 열심히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의 생각이 아빠인 저보다 훨씬 깊었던 것입니다.
또 하루는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전화가 와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를 조퇴하고 아이를 찾아 온 동네를 뒤졌는데 아이는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 마구 때렸지만 아이는 단 한차례 변명도 없이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부모님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또 사고를 쳤습니다. 연말에 동네 우체국에서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통을 넣는 바람에 우체국 업무에 지장을 끼친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날 저는 또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한마디 변명도 없이 "잘못했다"고 하더니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냐"고 하니까 아이는 그 동안 우체통에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까 손이 닿아 다 들고 가서 부쳤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내용을 썼는지 궁금해서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날까 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 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하면서 우는 거 봤어. 근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 안나. 아니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이 편지를 읽으며 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아들이 엄마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나만의 생각으로 너를 바라보았어. 우리 아들이 나보다 더 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어. 아들아 사랑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행복편지’ 발행인 박시호는?○대전 출생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법 석사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세종나눔봉사대상 수상(2010)
○현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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