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을 활짝 열며
2014. 7. 15.
창원지방법원 법원장 강 민 구
마음이 흐르는 대로 적기 위해 경어체를 생략한다. 예술법정 프로젝트의 시작점, 그 연원에 대하여는 『예술법정의 DNA』라는 글(법률신문 2014. 7. 3.자)에서 이미 밝힌바 있다. 각 작가분과 인연, 작품명 등은 50여 쪽에 이르는 안내책자 도록 및 추진현황 백서에 실명으로 상세하게 모두 기록하였다.
아울러, 강한 의지력의 조화로움을 몸소 가르쳐주신, 이 모든 인연의 단초인 어머니에게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생로병사 인연법에 불구하고 조금 더 곁에 건강히 계셔 지켜봐 주시길 간절히 빈다.
1. 사진을 얻다, 사람을 얻다
창원지방법원장 부임 후 가장 먼저 평소 존경하는 박시호 행복편지 발행인 대표께서 60 × 40 인치 양귀비 대형 사진을 디아섹 양면 아크릴 압축 패널로 만들어 법원장 영전축하 선물로 보내 오셨다. 포장을 뜯고서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사진을 나 홀로 즐김은 죄악을 저지르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바로 이봉자 총무과장에게 국가에 기증처리를 지시하면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자고 했다. 실무진이 처음 물색한 것이 경남은행 앞 동문 출입구 내부 상단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아니었다. 현관 로비로 옮겨 놓으니 바로 사진이 화사하게 제 모습을 찾는다. 아! 역시 작품은 그 제자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사 순시를 했다. 소년법정 소년대기실을 보니 쇠창살이 노출되어 있고, 화장실이 남, 여 구분이 없다. 정말 있을 수 없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졌지만, 이미 관련 부서에서도 그 개선을 위해 연구하여 예산 배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바로 철거, 개선공사에 돌입하였는데 박 대표님께서 소년법정 사진 세 장을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사진 세 점이 도착해서 흥분하면서 걸었는데 원작과 달리 배경이 전부 분홍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진 초점도 흐릿했다. 일부러 소년들이 화사하게 느끼라고 이리했나, 사진을 확대해서 초점이 흐릿한가.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수일이 지났다. 카카오톡으로 서울에 있는 집사람에게 보내주니 색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미술대학을 가려다 일반대학을 간 집사람이기에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법정 설비 담당한 분이 실수로 코팅지를 손상시켜 살살 긁어보니 분홍색은 파손 방지용 밀찰 비닐 색깔이었다. 걷어내니 얼마나 화사하고 화려한 원색이 나타나는지, 다들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런 작품을 생전에 봤어야지. “알아야 면장 한다”는 옛말은 역시 진리구나 싶었다.
이에 용기를 얻고 카톡 등 SNS로 예술법정 취지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한 지인(知人)들이 아마추어 사진작가 입장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 파일을 보내 주었다. 예술법정에 꼭 저명작가 작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계급장이 따로 필요 없다. 이종처제가 제주 용눈이 오름 사진과 서산 용비지 사진 등 작품 수점을 보내왔다. 중앙지법에서 이웃에서 근무한(지금은 개업하여 법무사) 직장동료가 멋진 작품 사용승낙을 해 주기도 하였다.
그 면면을 촬영하여 “창원법원 예술법정 시즌 1”이라고 이름 지어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Youtube)에 올렸다. 공신력을 갖추기 위해 직접 법원장 실명으로 바로 올렸다. 아마 한국 법원 역사상 법원장이 직무상 일로 유튜브 동영상 올린 것은 제1호이리라. 겁 없이 진격한 것이다.
이 방법이 주효했다. 지역에 널리 알리니 각 예술가 단체에서 자발적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접촉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작품 비용에 관심이 더 깊은 그룹과 재능 봉사 쪽으로 마음을 굳힌 그룹. 이같이 대별되었다. 어찌 보면, 노력을 대가를 당연히 청구해야 하기에 전자(前者)의 태도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시 별도의 예산이 없었다.
신설 개청법원은 건축비에 문화예술품 구입비가 상당 액수 계상이 된다. 하지만, 창원지방법원 같은 경우, 기존 존치 법원이라 신규로 구입할 예산이 없다. 그렇다고 100% 무조건적인 기부도 대법원 규정상 허용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표구비, 인화비, 판넬비 정도는 자력으로 부담해야 한다. 그 액수도 모든 법정, 조정실을 하려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지 아니해도 이 사업을 한다 하니 서울의 모 중견 법조출입 기자 분은 “하는 것은 좋은 데 예산낭비 없어야 합니다.”라고 못을 박는다. 옳은 말씀이다. 납세자로서, 주권자로서 누구나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수십 년간 나라의 녹을 받았는데 이를 스스로 모를 리 없다.
서예 작가 분들이 지역사회에 많이 계시는 데 법정에 서예를 직접 게시하면 국민을 법원이 훈계시키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시차제 소환 등으로 공개가 덜 되는 조정실에 서예 작품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예술법정 프로젝트는 여러 각도에서 세심히 고민하고 또 살피며 진행했다. 원래 법원의 일은 일견 더디 가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 진행된다. 모든 작품 선정은 법원장 개입을 피하고 실무자 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도록 완전 위임을 하고, 작품 구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봉자 총무과장을 통해서 지역 서예 작가 분들이 법원장실로 오셨다. 대접할 거라고는 직접 제다한 따스한 녹차와 덕담이 전부였다. 다들 크게 마음을 여신다. 가만히 궁리하니 줄 선물이 가까이에 있었다. PC 속 외장하드에 잠자고 있는, 지난 27년간 꾸준히 수집하고 정리하였던 각종 교양자료 파일들이 떠올랐다. 선물로 드리려고 대용량 USB에 차곡차곡 옮겨 저장을 하였다.
법원 현관 상단에는, 목민심서 형전 제6조 편을 한자와 한글을 병행하여 작품을 걸기로 결정했다.
“소송을 함에 있어 근본은 성의를 다함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다. 그 다음으로 자신을 바르게 하여 국민을 경계하고 가르쳐서 굽은 것을 바로 잡아줌으로써 송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聽訟之本(청송지본) : 소송의 판결의 근본은
在於誠意(재어성의) : 성의에 있고
誠意之本(성의지본) : 성의의 근본은
在於愼獨(재어신독) : 신독(愼獨)에 있다.
其次律身(기차율신) : 그 다음으로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하고서
戒之誨之(계지회지) : 백성을 경계하고 가르쳐서
枉者伸之(왕자신지) : 잘못을 바르게 잡아 줌으로써
亦可以無訟矣(역가이무송의) : 또한 송사(訟事)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백성’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혹여 고압적 자세 등의 오해가 있을지 몰라 ‘국민’으로 바꾸어 보았다. 한자와 한글 서예 대가 두 분이 같은 크기의 한지에 일필휘지로 적어 준 작품을 180 × 120 cm 사이즈로 같은 크기로 표구해서 걸었다.
그 사이 모든 작가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와 USB를 송부했다. 모 작가 교수님은 “쌀 한 되 시주하고 백 섬 받아간다”라는 표현으로 고마움을 역으로 표시 하셨다. 역시 지성이면 감천인가! 1호 대법정(국민참여재판 법정) 작가가 되는 운을 가진 분과 연결이 되었다. 물, 돌, 계곡을 소재로 한 수묵담채화 영인본 파일과 원본 한 점을 받고서, 뇌성마비의 장애를 이겨낸 그 분을 떠올리니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시간이 흘러 올해 신규 법관임용을 받은 판사님이 이미 고인이 된 자신의 어머님 작품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기적이다. 인연이 합치되지 않았더라면 그 초임판사가 어찌 어머님이 수호천사처럼 그림 속에 재림하는 법정에서 재판 할 수 있으랴.
모 경남선거관리위원께서 고이 간직하던 대작 원화를 빌려 주신다. 이것도 기적이다. 감정가격이 무려 1억 2,000만 원이다. 바로 손해보험에 가입을 하였다. 남해에서 계급장 떼 놓고 횟집을 하시는 아마추어 작가분이 감동받아 사진을 주신다. 예술법정의 취지가 널리 알려져 이제는 ‘지인(知人)의 지인(知人)’들이 작품을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공감대의 인상적인 확산이었다. 수려한 풍광을 담은 여러 사진 작품들과 멋진 운필의 서예작품 상당수가 도착했다.
5 × 1.7m 대작 소나무 풍경이 도착했다. 크기로도 발군이다. 작품명 "바라보다". 어린 시절의 작가가 기대어 엄마를 기다리던 언덕 위의 그 소나무의 이미지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아 표현하여, 현대인의 정서적 안정을 꾀하고 쉼터를 주고자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남해 등기소 직원의 댓글을 보고 연락 주신 대가 사진작가, 그 분 소개로 그림 원화를 보내주어 형사법정을 꾸미게 한 인연을 낳은 여성 작가. 실로 그 아름다운 인연은 다 적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가급적 백서에 빠짐없이 담으려 노력했다.
2. 차 향기를 담아, 예술법정을 활짝 열다
그 사이 실무 스탭(staff)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시뮬레이션, 설치 용도팀, 홍보팀, 가이드북 제작, 동영상 제작 모두 일당백의 기백으로 뭉쳐 가이드북, 동영상은 일체의 외주 없이 자체 제작하였다. 누가 믿을까. 관리원이 홀로 어도비 프리미어 공부 도전하여 만든 것을, 아래한글 글상자 기
능으로 가이드 북 만든 것을. 이봉자 총무과장은 이임하는 날 오후에 내부전산망에 그간의 과정을 소상히 공개하였고, 이어서 각 실무자들이 동영상 제작기, 가이드 북 제작기를 게시하였다.
이봉자 과장의 전산망 게시글에 대한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당시 내부 직원들의 심정을 담고 있어 보인다.
“먼저 국장님의 영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예술과 소통하는 법원을 담당한 실무자로서 느낀 점을 말하고자 어렵게 몇 자 올립니다.
지금까지 전국법원의 모든 법정은 정형화된 시계와 규격화된 달력만이 외롭게 벽에 매달려, 이것이 법정의 기본인 것처럼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법정에 상시 출입하는 우리들조차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 왔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지금의 시대와는 거리가 있었고, 이에 전국법원 최초로 지금까지의 딱딱한 법정의 기본 틀을 벗어나 국민들에게 조금 더 다가서고자 법원장님의 추진력과 많은 분들의 도움, 실무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모아 예술로 소통하는 법정 만들기를 시작하였고, 이제 씨를 뿌린지 3개월 만에 꽃 몽우리가 자라 꽃을 피우는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면서 법정에 걸린 그림과 사진이 실제로 법정에 출입하는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저 또한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고착화 된 사고를 버리고 국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작은 발걸음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이 인생을 변화시키듯이 조그마한 변화가 법원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렇다. 문은 두드리면 열리고,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세게 두드리면 더 빨리 열린다. 꿈은 꾸어본 자만이 현실로 만들 수 있고, 꿈을 애초 가져보지 못한 이는 그것을 이룰 수도 없다.
법원장으로서 하루하루 같은 꿈을 꾸었다. 할 수 있고, 반드시 해 낸다고. 용지호수 아침산책마다 그 각오는 더욱 단단해 졌다.
시즌 2, 시즌 3 동영상이 순서대로 만들어지고, 드디어 대망의 통합본 동영상이 2014. 6. 18.
만들어졌다.
그런데 수일 후 잘 재생되던 통합본이 최신 스마트폰에서 재생불능 포맷이라 나온다. 용지호수 걷다가 불현듯 배경 음악 저작권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확인해 보았더니, PC에서 유튜브 관리자 모드에 들어가니 저작권 문제였다. 구글 유튜브 서버가 처음에는 그냥 방치해 두다가 조회 수가 급증하면 자동으로 저작권 검사를 하여 경고해 주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80만원 상당의 사용료를 처리하려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포털사이트 검색 창에서 “무료 음원”이라 입력해 보니 유튜브 제작도구 라이브러리 편에 150여 곡 무료 음원을 숨겨 둔 것을 발견했다. 80만 원 국고를 절약했고, 스스로 뿌듯해 했다.
예술법정에 관한 각종 자료들의 링크를 전부 모아 에버노트(evernote) 파일로 저장하고 그 파일을 공개하였다. 문제가 되면 중계지인 에버노트(evernote) 원 파일에 가서 링크를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 모두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를 법원장 스스로 집행하였다. 그러면서 여러 노파심이나 오해에 대비에 예술법정 관련 Q & A 파일을 직접 작성해서 에버노트(evernote)에 따로 저장하였다.
참여 작가 모두에게 아래의 취지가 적힌 감사장 수여식도 가졌다.
"귀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식견, 사회에 기여하고자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창원지방법원 ‘예술로 소통하는 법정’을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법원가족 모두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비록 창원에서의 몸짓이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종당에는 전국 법원이 변하게 되고, 그러면 나라가 변하며, 최종적으로 우리의 일상이 변하게 된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담아 그러한 취지로 즉석 인사 연설을 하였다.
예술법정 한국 근대사법 120년간 감히 그 어느 누구도 꿈꾸지 못한 일을 우리 창원법원 가족은 단 4개월 만에 완성하고야 말았다. 누가 그 과정에 흘린 마음의 눈물을 다 알겠는가마는 아무튼 법원장으로서는 인복이 터진 2014년 상반기였다. 주무과장은 모든 미션을 다 수행하고 7. 1.자로 국장 승진을 하고, 동영상 작업 실무자는 또 다른 새로운 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예술법정’ 프로젝트 이외에도, 그 사이 법원장으로서의 본연의 업무인 ‘재판 업무 지원, 개선’, ‘관내 지원, 등기소 초도순시’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창원이야기 이메일 소통’이 이루어졌고, ‘오프라인 350명 계급장 불문 마라톤 릴레이식 차담(티타임 환담)’을 매일 이루어 냈다. 몸이 10개가 되어야 될 정도의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 나갔더니, 4월경에 심한 몸살이 1주 정도 지나가기도 했다.
6월 어느 날 마산 저도를 걷다가 IT 공부방 개설 생각이 번개 맞는 것처럼 떠오른다. 즉시 계획을 구상하고 전국의 고수들에게 SOS를 보냈다. 한 곳만 제외하고 전부 OK 하였다. 결국 ‘인생사는 것은 정으로 사는 거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이리하여 다음 차례인 ‘정보화 IT MIND UP’ 프로젝트의 기획을 다듬게 되었다.
자기 것을 풀어야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당연한 우주원리를 통상 잊고 산다. 나누고 풀면 그 10배, 100배가 들어온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뿌린 대로 거두며,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다.
강행군 와중에도 시간별로 짜놓은, 직원들과의 ‘차담(茶啖) 릴레이’를 마쳤다.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앉은 곳에서 차를 반쯤 마셨는데도 그 향기는 여전히 처음과 같고, 묘한 작용 일어날 때 물이 흐르듯 꽃이 피더라.” 추사 김정희가 즐겨 사용하던 북송 시인 산곡(山谷) 황정견의 시(詩). 창원
법원 오프라인 내부 소통으로 350명 전 직원과의 차담시간에 함께 보고 읽는 시다.
지난 2. 13. 자로 부임한 후 350명 전 구성원을 계급장 불문하고 6명씩 차담조를 짜서 5개월간 마라톤 릴레이 차담을 진행했다. 차담을 통해 구성원의 화합과 단합, 소통이 이루어지고 이 시간을 통해 모두가 하나 됨을 경험했다. 그 대미를 음지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와 엘리베이터 안내 도우미 아가씨와 함께 하면서 회향했다.
그사이 수많은 제도개선(예를 들면, 성년후견인 증명서 발급절차를 전국 단위로 개선시키는 계기가 됨)과 건의사항을 전부 수용하였고, 법원장과 구성원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서먹함이나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재판부 재판장으로서 조정기일 차 한 잔에 당사자와 대리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록 육신은 고단하였지만,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이 마라톤 창원법원 차담 시간은, 스스로에게 “참 좋았던, 맑고 향기로우며 아롱진 추억”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같은 차 향기를 공유하며, 우리의 마음은 모이고 뭉쳤다.
프로젝트의 핵심 스탭들이 이제 그 역할을 마치고 인사이동으로 하나 둘 떠난다. 인생사 원래 ‘회자정리’ 아니던가. 또 다른 그 누가 그 일을 이어가면 된다. 지도자가 자기 편하자고 조직원의 앞길을 붙들 수는 없다. 언제가 될지 법원장도 창원을 떠나야 한다. 떠난 후 이 아름다운 예술법정이 그 맥을 잘 이어가도록 관리위원회를 설치될 것이다. 효율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더욱 잘 작동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잃은 것은 없다. 약간의 육신의 고단함 외에, 잃는 것은 없다. 반면에 얻은 것은 수없이 많다. 우리 법원 내부 구성원들의 자긍심, 주인의식을 고취하고, 지역 주민에게 고품격 재판서비스 제공하게 된 일. 더구나 추진현황 백서까지 완성하여 이미 전국 법원장에게 제공하였다. 더구나 아래와 같은 예리한 분석도 있었다.
{예술법정의 가장 큰 수확은 제 생각에는 사무직원들의 생각에 서서히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싶습니다. 사법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이 아니라, 실은 그간 큰 변화 없이 지내던 사법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더 큰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법정'이라는 공간을 '국민'들이 제기한 소송절차가 진행되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이 번 예술법정을 복기하여 그 변화를 살펴보면, 이는 '일터'(판사, 일반직 포함)의 변화하는 의미가 더 커 보입니다. 사법'행정'의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의 추세도 오피스 환경의 개선(office gardening이나 서서 일하는 전동책상 등등)에 방점을 찍어 논의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대구 쪽이나 부산 쪽과는 달리, 서부경남의 진주나 창원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늦고 처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예전의 부임지여서 아시겠지만, 대전통영 고속도로 뚫리기 전에는 서울에서 4~5시간 이상씩 걸리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자조적으로 단념하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그만큼 정체되어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차담, 창원이야기, 예술법정, IT Mind Up 프로젝트 등이, 그간 침체되어 있던 관내직원들의 자부심을 자극하여 변화를 수용하고자 마음을 바꾸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법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진을 얻었다. 그림을 얻었다. 더 큰 것은 사람을 얻었다. 작가라는 이름의 국민의 마음을 얻었고, 열성을 다해준 고마운 스탭 한 명 한 명의 따뜻한 눈빛을 얻었다. 그렇다. 예술을 얻었고, 사람을 얻었다. 차 향기와 함께 창원법원 식구들과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예술법정을 준비 완료하였다.
바쁜 법원장 대신하여 재판업무 꼼꼼하게 챙긴 박민수 수석부장, 내내외 공보책임자 공보관 최문수 판사, 예산집행 책임자 박원복 국장, 중간 지휘자 이봉자 총무과장, 카톡으로 너무 열심히 동영상 홍보하여 스패머로 오인신고 되어 상당기간 계정중지 처분까지 받은 신임 김성훈 총무과장, 그리고 몸은 비록 법원 바깥에 있지만 이 지역 인근인 진주 출신 변호사로서 법원장과 한국정보법학회 총무로서 손발 맞추고 힘든 고비마다 수시로 아이디어 조언해 준 김상순 변호사, 외부 컬럼으로 힘을 보태어 준 성지용 부장판사, 함석천 부장판사.
수많은 작가 분들. 이 많은 인연 빚을 무엇으로 다 갚을까. 창원법원을 반석위에 올려놓으면 그 인연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걸까. 특히, 내부 실무 스텝인 하태운, 김정범, 정성기, 최세욱, 정현우, 이승환. 참 대단한 일꾼들이었다.
관사에 퇴근해서 창밖을 바라 보며 하루를 복기하고 내일을 생각한다. 처음 부임 시 계획했던 여러 목표들이 떠오른다. 일부는 이미 달성하였고 일부는 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추진하여야 한다. 법원견학 프로그램에 ‘법원장과의 대화’ 추가, 법원장 차담 간담회, 법원장이 쓴 ‘창원 이야기’를 통한 온라인 소통을 달성했다.
1학교 1멘토링(교육청과 연계하여 창원 시내 중·고등학교 가운데 다수 학교를 선정하고, 1개 학교당 1명의 법관을 멘토 법관으로 지정하여 지속적인 소통을 통한 법률교육 실시)과 캠퍼스 열린법정(업무협약을 체결한 관내 대학교와 협의한 후, 재판부가 관내 대학교 법대 캠퍼스로 찾아가서 실제 재판을 진행하는 ‘캠퍼스 열린법정’ 실시하여, 관내 대학생에게 사법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인근 지역사회 시민들의 재판절차에 대한 이해외 신뢰 제고), 어린이 모의재판 경연대회(지방법원 승격 30주년 및 법원문화체험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시행된 어린이 모의재판 경연대회를 정례화 하여, 학교생활 및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형사상 법률문제를 흥미롭게 구성하고, 참가 1팀당 지도법관 1명을 지정하고 지도법관이 참가 학교 측에 자치법정 운영 지도 및 강연 실시)도 역시 잘 추진하리라 다짐해 본다.
빠르노니 시간이라, 벌써 만 5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차 향기를 맡으며 안팎으로 협심하여 준비해왔던 예술법정의 문을, 이제, 활짝 열어젖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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