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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11.

박시호의 행복편지 - 월간조선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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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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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의 행복편지]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 부부의 사랑 이야기 / 아내의 저녁준비 / 이불 한 채의 사랑

글 : 박시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사진 : 박한나 Illustrator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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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우리 부부는 변두리에서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하기도 했습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라며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라는 아내의 대답에 나는 “부부가 뭣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는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각자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오늘 따라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그런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조금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물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허탈하면서도 씁쓰레한 미소로만 웃어 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하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어.”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왜 나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냐고 나 혼자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다고 …. 하도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병에 걸려 먼저 돌아가셨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천장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 
  
  “야속한 사람, 왜 나만 남겨두고 먼저 떠났어! 가려거든 나도 함께 데려가지 …. 자식들 다 소용없어 …. 어려서 갖은 고생 다 하면서 키웠지만 다들 결혼하고 나면 마누라한테 잡혀서 기도 펴지 못하고 잡혀 살고 있잖아?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애지중지 키웠는지 애들은 알지 못하나 봐. 나중에 자기들도 늙고 병들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지 ….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도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어 …. 부모는 불편하고 방해만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식들한테 하는 것 봐봐. 그것 반만이라도 부모에게 신경써 주면 이런 일들은 없을 텐데 …. 자식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런 것을 왜 진작 모르고 살았을까? ….”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 이 내용은 신정남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부부의 사랑 이야기

 

  나이 스물여덟, 남자는 어느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요.
  
  나이 스물여섯,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성당에서 조촐한 출발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요. … 그때,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었어요.
  
  그들이 살던 자그마한 집에 그만 불이 났답니다. 그 불로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이 만들어 갈 그 수많은 추억들을 이제는 더 이상 아내가 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 후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에 있었죠.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남편은 곁에서 아내를 도와주었지요. 처음엔 아내가 많이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답니다.
  
  늘 그것이 미안했었나 봐요. 당신을 그 불 속에서 구해 내지 못한 것이 ….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말이에요. ….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적응을 하였지요.
  
  그리고 이제서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 하나 남은 세상의 목발이 되어 주고 있음을 알게 된 거죠. 이젠 다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이젠 둘은 아무 말 없이 저녁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편안한 나이가 되어 갔답니다.
  
  시간은 그들에게 하나둘씩 주름을 남겨 놓았지요.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여전히 벨벳처럼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생겨났지요.
  
  남편은 이제 아내의 머리에 난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답니다.
  
  “이제 겨우 8월인데 당신의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렸군. ….”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왠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한답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죠.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나, 당신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군요. ….”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말을 전했답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남편이었지요.
  
  아내는 많이 슬퍼했답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 더 많이 말이에요.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하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 주는 것이랍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거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 말이죠.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이제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머리에 가득 내려앉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당신에게 지금보다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 줄 수도 있었는데 ….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
  
  아직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너무나 늙어 버렸다는 것을 ….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었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게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 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소.
  
  또한 우리 생활의 어려움과 세상의 모진 풍파도 말이오. 난 당신이 나의 그 지난 시절 내 미소를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소.
  
  지금의 나의 흉한 모습보다는 ….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 주지 못하지만 늘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이제는 환하게 변해 버린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를 바라오.
  
  
  아내는 정말로 하얗게 변해 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답니다.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측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 주던 그 미소를 지어 줄 수 없다는 것도 ….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내가 당신의 그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난 당신의 마음 이해하니까 말이에요. 참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하늘로 되돌아갔답니다.
  
  ※ 이 내용은 정영진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아내의 저녁준비

 

  오늘도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인력시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호가 경기 침체로 인해 공사장 일을 못한 지도 벌써 넉 달이나 흘렀다. 요즈음에는 인력시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루의 일자리도 찾지를 못하고 가랑비 속을 서성거리다 쓴 기침 같은 절망을 안고 뿔뿔이 흩어지기가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남편이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자 정호의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으로 일을 다니며 정호 대신 힘겹게 가계를 꾸려 나가고 있지만, 그것도 살림에는 그리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한 초라한 밥상에서 정호는 늘 죄스러운 한숨만 내뱉을 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 밉다. 그래도 정호는 무언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아이들만 집에 남겨 두고 다시 집을 나섰다. 목이 긴 작업신발 속에 발을 밀어 넣으며 끝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주인집 여자를 만날까 봐 발소리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 달째 밀려 있는 집세를 생각하면 그는 어느새 고개 숙인 난쟁이가 되어 버렸다.
  
  저녁 즈음에 오랜 친구를 만나 일자리를 부탁했다. 친구는 일자리 대신 삼겹살에 소주를 샀다. 술에 취해 고달픈 삶에 취해 산동네 언덕길을 오를 때 야윈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던 무수한 별빛들. 집 앞 골목을 들어서니 귀여운 딸아이가 그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해 먹는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아빠 기다렸어.”
  
  일을 나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 주라고 이렇게 고기를 싸 주셨어요. 그러지 않아도 영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반찬 해 달라고 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집세도 못 내면서 고기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에야 저녁준비 한 거예요. 열한 시 넘었으니까 다들 주무시겠죠. 뭐.”
  
  불고기 앞에서 아이들의 입은 꽃잎이 됐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행복해했다.
  
  “천천히들 먹어. 잘 자리에 체할까 겁난다.”
  
  “엄마. 내일 또 불고기 해줘, 알았지?”
  
  “내일은 안 되고 엄마가 다음에 또 해줄게. 우리 영준이 고기 먹고 싶었구나?”
  
  “응 ….”
  
  아내는 어린 아들을 달래며 정호 쪽으로 고기 몇 점을 옮겨 놓았다.
  
  “당신도 어서 드세요.”
  
  “나는 아까 친구 만나서 저녁 먹었어. 당신이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정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가엾은 아내 ….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주인이 준 게 아니었다. 숫기 없는 아내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이다. 아내가 구워 준 고기 속에는 누군가 씹던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 채 섞여 있었다. 아내가 볼까 봐, 정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서 삼켜 버렸다. 아픈 마음을 꼭꼭 감추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착한 아내의 마음이 찢어질까 봐. ….
  
  정호는 늦은 밤. 아내의 구두를 닦는다. 별빛보다 총총히 아내의 낡은 구두를 닦으며 내일의 발걸음은 지금보다 가볍고 빛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이철환님의 글입니다.
 

 
이불 한 채의 사랑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누라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 … 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라고 묻자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이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결혼하자마자 첫살림을 살던 그 문간방.”
  
  지금 생각하면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고, 수도관이 터져 밥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안식처였습니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볼까?”
  
  숟가락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 단꿈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내의 기억 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이렇게 높았었나?”
  
  남편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 그땐 이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겨서 우리 부부는 멍한 상태에서 옛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돈은 없었지만 둘만 있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었고, 아이들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이 세상에 우리 부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 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한 이불 보따리 속에는 이불보다 따뜻한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행복하게 사세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허름한 변두리의 작은 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새삼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 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이 내용은 김도용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연재 끝-

2012. 12. 3.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 - 박시호의 행복편지(월간조선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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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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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의 행복편지]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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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소대장 비망록


  쉼없이 달려온 인생길을 어느 날 문득 멈춰,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는가? 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만 행복한 삶을 사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될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래전 ‘박시호의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에서 95세 어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 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내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의 꿈을 끝까지 실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중간중간 고비가 생기고 그 고비를 넘기며 생각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면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꿈은 자꾸 도망가기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게 되지요.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목 황순원 선생님이 열일곱 소년 시절에 쓴 <나의 꿈>이라는 시를 보면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꿈
  
  꿈! 어젯밤 나의 꿈.
  이상한 꿈을 꾸었노라.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 심으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
  
  언제든 잊지 못할 이 꿈은
  깨어 흩어진 이 내 머리에도
  굳게 박혔노라.
  다른 모든 것은 세파에 스치어도
  나의 동경의 꿈만이 존재하나니
  
  
  이와 같이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도전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꿈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도전하는 삶보다는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는 삶보다는 도전하는 삶이 더 행복하기에 은퇴 후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행복편지는 제2의 인생 ‘실버 라이프’를 열심히 살고 있는 그런 분 중의 한 분인 김무일씨의 이야기입니다.
  
  김무일씨는 1943년 중국 심양에서 독립유공자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해병대 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1966년 해병 장교로 임관한 후 애기봉과 임진강이 연하는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다가 월남(지금의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에 뛰어들기 위해 파월선에 올라 월남 다낭항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월남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월남전에서 청룡부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살아 돌아온 후 그룹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노사분규를 해결하며 노사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는 회생불능 업체를 살려내는 등 늘 직원들과 함께하는 리더로서 활약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였고 땀으로 얼룩진 과정을 겪은 청장년 시절을 보냈으며, 기업에서 은퇴한 후에도 쉬지 않고 제2모작의 인생을, 서양화가로 그리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지난해 말, 월간 《문학저널》 문인회에서 수필부문과 시부문에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68세의 늦은 나이에 문단에 등단하여 작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근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라는 서화집을 출판하는 등 제2의 인생 ‘실버 라이프’를 아름답게 즐기고 있습니다.
  
  ‘박시호의 행복편지’는 김무일 작가의 서화집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에 실린 월남전 이야기를 기록한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마블 마운틴(Mable Mountain)의 추억’
 

  ‘Mable Moutain’은 베트남 중부도시인 ‘Da Nang’과 ‘Hoi An’시 중간쯤에 위치한 해발 180여m의 돌산으로,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명승지이다.
  
  평야지대와 열대림 가운데 우뚝 솟아 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곳엔 신비스러운 종유굴과 그 속에 오행사라는 고찰이 함께 있어 이곳 원주민들에겐 오래전부터 이어온 신앙과 영험의 성지이기도 하다.
  
  금년은 자유 월남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월남 패망 제4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과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겪었던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월남전은 온 천지를 진동하던 전폭기의 금속성과 ‘코브라’헬기의 둔탁한 회전음, 밤공기를 뒤흔들던 폭발음과 사방에 불 밝히던 조명탄, 어디선가 벌어지던 간헐적인 소총소리, 푸르다 못해 검은 빛마저 감도는 베트남 정글, 끝없이 펼쳐진 열대림을 헤쳐 가며 생과 사의 찰나, 그리고 매일같이 가슴을 짓누르는 전쟁터의 긴장과 초조…. 열대 전선의 밤은 온갖 소리의 불협화음 속에 하루를 잉태하고 또 하루를 초조하게 흩날리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거리를 방황하던 헐벗은 피란민들과 오랜 전쟁에 지친 불구자들의 군상, 그리고 우리를 볼 적마다 ‘따이한’을 연호하며 손 벌리던 영양실조의 어린아이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채 폭격으로 흩어진 처참한 촌락들의 잔해들…. 과연 전쟁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전쟁이야기를 통해서 절실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요즈음은 쾌적한 항공편으로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이 베트남이지만, 그 당시에는 부산항을 떠나 꼬박 6박7일의 파도치는 바다를 뚫고 항해해 도착하던 곳이다.
  
  그때를 기록한 옛 <소대장의 비망록>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1967년 9월 30일(토) 맑음.
  
  부산 제3부두에 운집한 수많은 환송인파, 제병지휘부의 절도 있는 출국신고, 파월 수송함 ‘Goden Bear’호의 구석구석에 매달린 채 손에 손에 든 전투모로 박자를 맞추며, 신들린 듯 외쳐대는 군가 합창은 마치 ‘살아서 돌아와야만 한다!’는 파월장병 모두의 애절한 절규였으리라!
  
  이들을 마주보며 손 흔드는 어느 두메산골에서 온 듯한 순박한 촌부의 오열하는 얼굴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낭군을 떠나보내는 아낙네의 흐느낌을 삼키면서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용두산 멧부리에 메아리친다. 드디어 출항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한반도의 남부 해안이 아득해 가는 이 절박감보다는 또다시 밟아 볼 수 있을지조차도 모를 조국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것이다.
  
  
  1967년 12월 23일(토) 맑음.
  
  12월 22일 미명을 기해, Chu Lai 지역을 미 육군 Americal사단에 인계하고, 새로운 작전지역인 호이안 전술지역으로 이동하던 비룡작전의 첫날 ‘시누크 헬기’에서 바라본 ‘마불 마운틴’의 자태는 마치 한 폭의 안개 속 동양화이지만, 곧 벌어질 전투의 긴장 속에 소총을 품에 끼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혼자서 중얼거리던 한마디는 “이 평화스런 금전옥토에 전쟁이라니…. 전쟁은 없어야 한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였다.
  
  
  1968년 1월 21일(일) 흐림.
  
  ‘비룡작전’이 절정을 이루던 1월 20일, 뜨거운 열대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황량하기 그지없던 지역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그저께는 제1대대에 배속, 어제는 제3대대에 배속되어 매일 매일을 주간탐색과 야간매복으로 지새우던 차에, 그날은 마침 아무런 작전명령이 없는 듯하여 샌드백(모래낭)으로 중대 관측소 보강작업을 독려하던 중, 소대장의 철모를 튕겨나간 스나이핑(저격)이 김한성 하사의 흉부를 관통하여, 김 하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이곳이 바로 삼각주의 베트콩 아지트로, 전쟁의 현장에서 젊은 한 생명이 꽃도 피우지 못 한 채 하늘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의문에 잠긴다. 왜 전쟁은 아무 죄 없는 젊은 생명을 빼앗아 가는가, 왜 삶이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가, 신은 전쟁을 막을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전쟁은 현실이다. 나는 바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고 내 앞에는 적들이 나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나의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대한민국 나의 고향으로….
  
  빛바랜 <소대장의 비망록>을 들추며….
  
  
  1968년 1월 24일(수) 흐림.
  
  소대장에 부임한 지 어언 5개월째로 접어든다. 거의 매일 작전에 임하는 초조한 하루하루가 점점 지겨워진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듯 며칠째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제3대대 배속으로부터 나흘 만에 해제되어 지친 몸으로 귀대하였다. 베트콩들이 성청을 습격할 것이라는 ‘Quang Nam’ 성장의 첩보에 따라 출동하였다가, 경계임무를 그곳 민병대에 인계하고 복귀한 오늘은 비룡작전 개시 33일째 새벽녘…. 잠깐 눈을 붙이려 하는데 중대장이 소대장들을 집합시킨다. 지시사항은 다가오는 구정을 전후해 적의 기습공세가 예상된다는 첩보를 상급부대로부터 하달받던 중, 또 한 번의 긴급 출동명령이 떨어진다. 지역을 정찰하던 공병중대가 베트콩의 피습을 받아 아군 피해가 속출하니 출동하란다. 우리 소대는 해안도로를 따라 피습현장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 “불도져! 불도져! 여기는 뱃트맨! 즉시 나오라 오버!” 피습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해 있었고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즉시 예상도주로를 차단하고 공격에 임하는 우리에게 전상자 수습에 여념이 없던 공병참모가 다급하게 경고한다. 일대가 무수히 많은 부비트랩과 대전차 지뢰밭이니 조심하라고. 전선의 첨병인 소총 소대장들은 언제나 부비트랩과 대인지뢰라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민감하다. 수도 없이 많은 군인이 이것들에 의해 희생되었으니까. 즉시 소대를 전술횡대로 산개시켜 적의 예상도주로와 후측방을 포병지원으로 차단하고 정밀탐색하여 땅굴 속에 숨어 발악하는 십여 명의 무장 베트콩들을 치열한 교전 끝에 전원 사살하였다.
  
  이미 노출된 매복진지를 이리저리 옮겨 가며 거의 뜬눈으로 3일째 밤을 새운 다음 날 새벽녘, 철수를 위해 소대장이 밤새 위치했던 개인호를 정리하던 전령 유재호 상병이 갑자기 겁먹은 얼굴로 손발을 떤다. 뒤이어 선임하사관 천철수 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과 외마디 소리로 소대장을 부른다. 즉시 뛰어가 보니 개인호 한 구석에 대형 대전차지뢰의 뇌관이 보일 듯 말듯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일촉즉발!! ‘하마터면 소대원 전원이 몰살당할 뻔했구나!’
  
  우리 소총소대 전투원들은 바로 코앞에 닥친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지 못한 채, 아침 해가 뜨면 그 하루를 무사히 살고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작전에 임할 때나 지뢰밭을 통과할 때면 각자 자신들의 수호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의존하며 체념했다. 그리고 위급상황에 처할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재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그 급박한 와중에도 우리 소대장들은 어떻게 해서든 단 한 명의 소대원이라도 잃지 않고, 그들을 학수고대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태웠던가? 아마도 내일 이 세상을 하직하는 마음이 바로 이런 심정이리라!
  
  
  베트남 戰史에 한 획을 그은 ‘68년도 舊正공세’
 

  다시 <소대장의 비망록>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1968년 1월 29일 연합군은 월남의 가장 큰 명절인 구정을 맞아 1월 29일 18시부터 익일 06시까지 36시간의 휴전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적의 공세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월남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서기 1968년도 구정공세’의 막이 열렸다.
  
  이 전투에서 돌격명령과 함께 빗발처럼 쏟아지던 탄막을 뚫고 용감히 돌진하다 장렬히 산화한 김국조 하사, 김정남 병장, 황종만 일병 등 17명의 전우를 잃고 말았다. ‘먼저 가신 전우들이여, 야자수 그늘 꿈꾸며 편히 쉬게나!’ 눈물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이 간헐적인 총성과 먼 하늘을 밝히는 조명탄으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지만 오늘 밤만은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온 천지가 마치 태풍전야의 긴박감에 싸인 듯 사방이 괴괴하기만 하다. 잠시 후 온 천지를 뒤엎을 듯한 포성과 함께 포병 관측 하사와 선임하사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소대상황실로 다급히 뛰어든다. 소대 상황실이라고 해 봐야 급조된 땅굴 지붕위에 야자나무를 통째로 잘라 얼기설기 얹었으며, 적의 포격에 대비하여 ‘샌드백’(모래낭)을 겹겹이 쌓아 올린 비좁은 공간으로 그야말로 원시상태의 급편 방어진지로서 비만 오면 물구덩이로 변하곤 하였다.
  
  “소대장님예, 관측소로 속히 나와 보시지예!”
  
  야광 시침은 새벽 두시 반을 가리킨다. 온 천지가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듯 휘황찬란하다.
  
  조명탄이 온통 새벽 하늘을 밝히고,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여단지역 전체가 불타오른다. ‘아! 붙어도 오지게 한판 붙는 모양이구나!’
  
  “한라산, 한라산, 여기는 임진강, 한라산장을 급히 바꿔 주기 바람!”
  
  즉시 중대 전술망을 통해 중대장에게 관측상황을 보고한다.
  
  같은 시각, 중대 상황실도 마찬가지로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소란함이 통신기를 통해 전해 온다. 아니나 다를까 중대 총출동 명령이다.
  
  목표는 호이안시 중심으로 제3대대 10중대와 11중대가 위기에 처해 있단다.
  
  2개 중대와 연계하여 호이안시를 점령한 적을 신속히 포착, 섬멸하고 탈환하라는 긴급명령이다.
  
  ‘아니, 2개 중대가 동시에 고전중이라고라? 그렇다면 상대가 더욱 쎈놈들이란 말인가?’
  
  이어서 제2대대 6중대가 돌파당했다는 위급상황이 통신망을 통해 전달된다.
  
  이날 새벽 ‘Duy Xuyen’군청을 점령한 적은 6중대의 자매부락인 ‘Chiem Son Dong’마을에 잠입, 수십 발의 60mm 박격포탄을 진내에 퍼부으며 기습을 감행한다. 이에 기지 점령 3일 만에 적을 맞은 중대는 VT탄(공중폭발포탄)의 진내사격까지 요청하면서 결사항전중이라는 급보다. ‘심상치가 않구나!’
  
  평소 ‘마이너스’ 중대 작전과 달리 전 중대의 전술행군은 장관이었다. 제1목표를 향해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는 동안, 칠흑 같은 밤하늘을 뒤덮는 조명탄은 우리의 철야행군을 전혀 불편 없이 밝혀 준다. 촌각을 다투라는 여단본부의 빗발치는 재촉에 따라 중대는 거의 속보 속도로 전진한다. 배속 미해병 LVT소대가 전속력으로 선두를 유도한다.
  
  출동 후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제2목표를 지날 무렵, 남지나해의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우측으로 ‘호이안’시로 통하는 538도로가 나타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 Cap소대가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새벽녘의 급습에 소대가 전멸됐단다. ‘예삿일이 아니로구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면 상대는 과연 어떤 놈들이란 말인가?’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진다.
  
  다시 우측 우거진 숲에 도달할 무렵, 통신기를 통해 제10중대에서 보고하는 다급한 목소리에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보고내용은, 속출하는 전사자 회수에 역부족일 만큼 스나이핑(저격)이 치열하단다. 하늘을 가릴 만큼 헝클어진 숲을 칼로 쳐내 길을 만들며 힘겹게 도착한 늪지대는 가슴팍까지 차올랐고 손가락만큼 큰 거머리 떼가 때를 만난 듯 달려들어 목덜미를 타고 젖은 작업복 속으로 스며들어 피를 빨아대니 온몸이 스멀거린다.
  
  작렬하는 포성과 교전상황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듯 긴장감이 엄습한다.
  
  중대본부가 개활지 중간의 독립가옥을 지나칠 무렵, 서 중위가 중대장에게 수 차례 반복된 적정을 보고한다. “얼핏 보이는 적군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하니, 중대장 답신은 ‘아군병력이니 안심하고 진입’하란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서 중위에게 직접 자세한 상황을 묻자, 카키색 군복에 널찍한 철모를 착용했단다. ‘카키색에 철모까지?’ 이제까지 보아 왔던 베트콩의 검정색 복장하곤 판이한 모습이다. 더욱이 연합군 모두가 녹색계통의 정글복이 아닌가? 즉시 중대장에게 우선멈춤을 건의한다.
  
  “중대장님! 뭔가 미심쩍으니 잠시 선두를 멈추게 하시지요!” “거, 괜찮대도 자꾸 그러네!”
  
  그냥 묵과할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다시 한 번 건의한다. “불길하니 재고하시지요!”
  
  “어이~. 당신이 중대장을…” 바로 그때였다. “따당 따당! 따다당! 따쿵, 꽈과광!!”
  
  중대장의 힐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 적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귀밑을 스쳐 간다.
  
  급히 자세를 낮추고 소대를 산개시켜 급편방어에 들어간다. 100여m 전방의 공동묘지에서 집중사격이 날아든다. 엄청난 화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석과 석조엄폐물 사이로 민첩하게 이동하는 카키색과 널찍한 철모가 보인다. ‘처음 보는 복장이다! 아! 소문으로만 듣던 월맹 정규군이 바로 저놈들이로구나!’
  
  목표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들자 스나이핑이 소대장의 철모를 꿰뚫고 팽그르르 돌아 내피에 꽂힌다. 통신병이 얼른 땅에 떨어진 철모를 주워 씌워 준다. 좌우측에서 협공이 시작된 것이다. ‘아뿔사! 포위망에 갇혔구나!’
  
  ‘살기를 원한다면 죽기를 각오하라!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길만이 이 진퇴양난의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미 해병 제1사단장 Smith 소장이 ‘장진호 철수작전’에서 남긴 명언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이제부터 후방으로 전진한다! 살기를 원한다면 나를 따르라!”라고 하였다던가?
  
  열대의 뜨거운 태양이 중천에 이글거린다. 정오경 시작된 치열한 교전상황이 벌써 두어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겪었던 베트콩들과의 전투와는 확연히 달라, 월맹 정규군과의 교전 속에 포위망에 갇힌 우리는 몹시도 괴로웠다.
  
  훈련된 정규군의 정확한 조준에 아군 피해는 늘어만 가고 이곳저곳에서 소대장과 위생병을 찾는 비명소리가 늘어만 간다. 작렬하는 포탄과 철모에 불꽃을 튀기는 적탄이 귀밑을 스치며 지옥의 묵시록을 방불케 한다.
  
  저들의 아군 소대장에 대한 저격 시도는 필수과목인 듯했다. 수신호를 하려 손만 살짝 들어도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스나이핑이 빗발친다. 아무리 소대장 티를 안 내려 애를 써 봐도 어찌 그리 잘도 알아보는지? 통신기 작동모습과 작전지도를 펼쳐 든 초급 지휘관은 저들에겐 충분한 먹잇감이기에 옴짝달싹 못할 정도다.
  
  불과 몇 분 전에 적정을 소상히 알려주면서 각별한 몸조심을 당부하던 제 10중대 박승진 소대장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그의 분대장인 이용구, 이건규, 이봉재 하사 등 9명의 소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관통상을 입은 옆구리를 감싸 안은 채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분사했다는 슬픈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 온다.
  
  문득 소대장다운 최후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한 번뿐인 인생~. 삶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 삶의 과정은 아마도 살아서도, 혹은 죽어서도 가야 할 행선지가 따로 있단 말인가? 그 영원한 행선지를 향해 낯선 이국 전선의 정글에서 이토록 허무하게 떠나야만 하는가? 학창시절에 단짝이었던 박승진 중위는 방금 전 꽃다운 스물다섯의 나이에 한 마리 학이 되어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올라 이승을 떠났다.
  
  
  “승진아! 졸업 후에 무엇이 될래?”
 

  꿈 많던 그 시절, 결강일 때면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무심히 흐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곧잘 나누던 대화의 화두는 언제나 미래의 포부였었다.
  
  “응~, 병역의무를 끝내는 대로 고시에 재도전해야겠지?” 그의 고시성적은 언제나 우리 과의 상위였다.
  
  “무일아! 너는?” “나~? 글쎄~?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문필가가 되고 싶긴 하지만….”
  
  며칠 전에 밤을 새워 읽은 고미카와 준페이의 만주군에 지성을 다룬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나?
  
  순간 정성껏 키워 주시고 무사히 귀국할 것을 학수고대하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과연 이 처절한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부질없는 상념도 잠시…. 갑자기 예상치도 못했던 세시방향에서 적의 60mm와 81mm 박격포탄이 동시에 날아든다.
  
  작렬하는 충격에 철모가 날아가고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포성의 진동으로 고막이 터져 피가 흐르고 골이 빠개지는 듯 아프다. 뒤이어 후측방 폐허건물에서 우리를 향해 예광탄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다.
  
  ‘엄청 정확한 저격수의 스나이핑이다. 까딱하면 죽는다. 그러나 의연해야 한다. 소대원들이 보고 있다!’
  
  소대장 벙커 정면의 둔덕이 포탄 폭발로 인해 흙더미에 파묻혀 시야를 가린다. 관측이 용이한 위치로 재빨리 두어 바퀴 좌로 굴러 옮기자마자 바로 그 빈 벙커에 직격탄이 작렬한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만일 어정쩡하게 그 자리 그냥에 눌러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마터면 포살당할 뻔했구나!’ 등골이 오싹해지며 갑자기 누군가가 뒷머리끄덩이를 잡아끄는 느낌이다.
  
  사방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비명소리가 귀청을 뚫는다. 아비규환 속에 코앞에서 용전하던 LMG사수 성기하 해병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응사방향을 그리로 집중시키려는 순간 이번에는 좌우측 숲속에서 협공이 시작된다. 사면초가다. 추측하건대 우리의 몇 배 화력이다. 이윽고 포위망이 좁혀 온다. ‘완전히 독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구나!’
  
  순간, 첨병소대를 이끌던 서정호 중위가 작렬하는 포연과 희뿌연 흙먼지를 헤치며 우박 같은 적탄을 뚫고 필사적으로 우리 정면으로 뛰어든다.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엔 오직 필생의 눈빛만이 불탈 뿐이다.
  
  흙투성이의 방탄조끼와 철모 커버가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부상당한 소대원들의 모습을 한눈에 연상할 수가 있었다. “서 중위! 웬일이야!” 다급하게 묻자 실탄과 로켓탄이 떨어져 속수무책이란다.
  
  ‘큰일 났구나! 우리 소대도 거의 바닥일 텐데!’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즉시 작전하사를 불러 35mm 로켓탄과 79mm 유탄을 있는 대로 수거하라 이르니 평소에 조용히 복명만 하던 조용환 하사가 갑자기 돌변하여 눈에 불을 켜대고 당장이라도 뜯어먹을 듯 대든다. “소대장님예! 그라모 안되지예! 우리 소대는 고마 죽으란 말씀입니껴?”
  
  고갈된 실탄보급의 항공지원도 끊긴 지 이미 오래되어 그의 항변도 당연했을 것이다.
  
  “소대장인들 조 하사 마음을 왜 모르겠나? 방금 지옥에서 헤쳐 나온 모습의 서 중위를 우리가 돕지 않으면 이 처절한 전쟁터에서 누가 그를 돕겠는가?” 차근차근 달래 생명 같은 실탄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들려 보낸다.
  
  “김 중위! 오늘의 이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게!” “서 중위! 속히 돌아가서 최선을 다하여 소대원을 구하게나!”
  
  포위망 속에 갇혀 아군 피해가 속출한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불리한 상황이다. 이윽고 실탄과 로켓탄이 바닥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오직 근접전에서나 사용할 수류탄뿐이다. “과감한 정면 돌파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1소대는 우일선, 2소대는 좌일선, 3소대는 후측 방어, 각 소대는 일제약진 앞으로!” 오해순 중사와 이영대 하사, 그리고 김태이 병장과 김일용 상병 등이 선봉에서 적진으로 뛰어든다.
  
  과감한 공격과 용맹스런 돌격으로 해가 중천에서 기울 무렵 마침내 철통 같았던 적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상황을 역전시켜 포위망을 벗어난 우리 중대는 드디어 제10중대와 연합하여 패퇴하는 적을 가로막고 소탕전에 들어간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싹 쓸어 버려라!”
  
  여단본부의 지시에 따라 수색조를 편성하여 전과 확대와 결과 확인으로 한숨 돌리는 순간, 우측방 20여m 전방에서 진두지휘하던 지순하 중대장이 갑자기 고목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진다.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달려가 중대장을 품에 안는다. “중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흉부에서 솟는 피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다. 후송 헬기로 떠나가며 마지막 지시사항은, 꺼져 가는 쉰 목소리로 “중대를 잘 부탁한다!”였다. 필자의 빛바랜 <소대장의 비망록>에 남겨진 이날의 기록은 ‘서기 1968년 1월 30일(화요일) 맑음, 오후 2시30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44년 전. 당시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던 이날의 치열한 격전이 월남전 전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1968년도 구정공세’였음을 우리 전투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고국에서 보내온 신문을 보고서였다.
  
  
  야자수 그늘 꿈꾸며 편히 쉬소서
  -동작동 국군묘지 파월 전몰 장교 묘역에서-
  
  우거진 정글, 뜨거운 사막,
  멀리 안남산맥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푸르른 남지나해에서 발진되는 공중포격과 함포사격
  지축을 뒤흔드는 작렬음과 고막을 찢어대는 곡사포 소리
  
  어렴풋이 먼동이 틀 무렵
  공격대기선에 낮은 자세로 포복하여 부릅뜬 눈초리로 전방을 쏘아본다
  
  1분대는 좌일선, 2분대는 우일선, 3분대는 소대본부를 엄호하라
  항공폭격이 끝날 무렵, 공격이 시작된다.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부하의 위험을 온몸으로 막아 분연히 산화한 그대 푸르렀던 청춘들
  그대들이 보여준 참된 용기와 값진 희생에,
  오늘의 옛 전우와 조국의 번영이 여기에 있다
  
  ‘Geiger’호와 ‘Upshore’호에 젊음을 싣고 부산항을 떠나, 일곱 밤 여덟 낮 동안 항해 다낭항과 퀴논항에 상륙,
  자유의 십자군 주월 한국군의 위용을 세계 만방에 떨친 지 어언 50년
  
  ‘맹호’는 퀴논과 뚜이호아 전선에서
  ‘청룡’은 츄라이와 호이안 전선과 짜빈동 전투에서
  ‘백마’는 닌호아와 캄란 전선에서
  그리고 십‘ 자성’과 ‘비둘기’, ‘백구’와 은‘ 마’는
  후방을 지원하던 격동의 세월들
  
  그 숱한 세월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
  그대들과의 못다 한 추억이 서린 이 언덕에서
  어깨를 나란히 사선을 넘던 옛 전우들끼리 이곳에 둘러앉아
  오늘도 그대들의 옛 모습을 그리며 명복을 빌어 올리오이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편히 잠드소서.
  
  - 광복 제60주년, 제50회 현충일, 파월 제40주년! 그리고 Viet-Nam 종전 제30주년에 즈음하여-
  
  2005년 6월 6일

  
  
  전쟁의 참혹함을 아시나요?
  
  부모를 잃고 형제도 잃은 고아의 모습을 아시나요?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온전한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아시나요?
  
  전쟁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다 앗아 갑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는 행복을 이야기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오직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살기도 힘이 드니까요.
  
  사랑하는 내 조국이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입니다.
  
  행복은 지키려고 몸부림쳐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이지
  
  막연한 생각과 행동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막는 일은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 이 내용은 김무일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서화집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하였습니다.

2012. 8. 27.

월간조선 9월호 - 박시호의 행복편지 -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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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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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의 행복편지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

글 : 박시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사진 : 박한나 Illustrator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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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내용은 어느 평범한 60세의 마라토너 허정회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저서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사람들은 왜 달릴까
  
  ‘달리기 세상’에 입문한 지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마라톤 72회, 하프마라톤 26회 등 나름 부지런히 달렸다. 훈련을 위해 달린 것까지 환산하면 적어도 1만km는 될 것 같다. 1년에 1000km 정도 달린 꼴이다. 
  
  우리나라 마라톤 인구는 약 5만명으로 추산된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소위 메이저 대회에 2만여 명씩 참가하는 것으로 가늠해 볼 때 그 배 이상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중 0.1%가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달릴까? 아마 답은 각인각색(各人各色)일 것이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가끔 당신은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 나는 산을 닮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風光) 등 모든 걸 다 내주면서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절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인간이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내면 가끔씩 혼내주어 경종을 울린다. 
  
  나는 마라톤을 닮고 싶기에 달린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곧잘 마라톤과 견준다. 긴 여정(旅程), 오르내리막이 있는 코스, 이탈할 수 없는 주로(走路), 역전과 재역전의 연속, 달릴 때의 고통과 완주의 기쁨 등 마라톤에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동물의 종(種)에 따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이라고 한다. 이를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5000m, 1만m 우승자)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고 표현했다.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적확(的確)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 수영은 학습이지 본능은 아닌 것이다. 걸을 수 있는 아이에게 달리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사람들에게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하면 선뜻 수긍하지 않다가도 이 말을 들으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달리기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최적의 운동이다.
  
  달리기는 행복이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아침 양재천에 나가 달린다. 밤잠을 설쳐도 새벽 다섯 시 경이면 운동화끈을 매고 집을 나선다. 양재천의 주인인 새와 곤충과 물고기가 객(客)을 반긴다. 달리면 무상무념(無想無念)해진다. 근심은 인간을 동요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근심을 유발하는 거짓된 생각이 달리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낡고 나쁜 생각은 나가고 새롭고 좋은 생각이 우리 몸에 스며든다. 운동 중에서 가장 단순한 운동인 달리기와 걷기가 인간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낀다.
  
  달리기는 자유다. 나는 출장 갈 때 잊지 않고 반드시 챙기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수영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운동화다. 호텔을 정하면 사전에 인근 조깅 코스를 물색하고 마땅치 않으면 호텔 내 수영장을 찾는다. 그것도 시원치 않으면 할 수 없이 헬스클럽 내 트레드밀에서 몸을 푼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면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 같아서 답답하다. 자연에서 달릴 때 진정 자유인임을 느낀다. 달리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살고 그들을 닮고 싶기를 기원한다. 
  
   프랑스 전역을 20여 일간에 걸쳐 가로지르는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서 무려 7연패를 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선수는 그의 저서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It,s not about the bike)에서 어렸을 적 자전거는 그에게 자유 그 자체였다고 쓰고 있다. 이웃 아저씨가 사준 한 대의 자전거가 불우했던 소년시절을 건전하게 극복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인간은 몸과 혼이 자유로울 때 행복을 느낀다.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다. 나는 최근 지난 10년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후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다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로 했다. 
  
  달리기 초기 나는 마라톤은 발, 즉 몸만 튼튼하면 완주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달리면 달릴수록 마라톤은 따뜻한 마음과 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발과 마음과 혼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조화롭게 작동되어야만 마라톤 완주가 가능한 것이다. 
  
  큰 대회에서 달리다 보면 시각장애인을 비롯해 양팔이 없는 사람 등 많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 못지않게 달리는 걸 자주 본다.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소위 비장애인들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인간의 본능인 달리기를 멀리하고 있는데 대체 그들은 왜 달리는 것일까.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달리기는 도전이다. 마라톤은 42.195km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100리가 넘는 먼 거리다. 달리면 달릴수록 멀게 느껴진다. 강한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대회에서 30km 이후 그날 처음 달린다는 아주 힘들어 하는 주자를 종종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 기어서라도 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마라톤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전조차 못 할 것이라고…. 
  
  마라톤은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경주다. 이봉주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제롬 드레이턴(Jerome Drayton·캐나다 출신의 197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은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마라톤을 할 때 느끼는 고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마치 태어나면서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달리게 되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 나는 재미가 없어 달리기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운동이 너무나 많다. 나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중에 대부분은 조금씩 해보았다. 내가 달리기를 안 했던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년 전,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하다가, 귓병 때문에 수영을 할 수 없게 돼 잠시 달리기를 하다 지금은 이렇게 ‘달리기 전도사’가 되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내 건강상태는 오히려 더 양호해졌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하게 된 이후 체중은 10kg이나 줄었다. 
  
  내가 마라톤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얘기다. 사람은 원래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잘 못 맡는 법인데, 한 30km 정도 지나면서 내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곤 했다. 그런 악취는 한 열 번쯤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나더니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몸 안에 있던 각종 노폐물 등이 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정도 거리에 가면 다른 사람 몸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러한 노폐물들이 암의 뿌리가 되는 게 아닐까 미뤄 생각해 본다.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이것은 자전거가 아닙니다》라는 책에서, 이 책은 자전거 타는 기술에 대해 다룬 책이 아니라, 암에 걸린 저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절망하지 않고 암을 극복하는 투병기라고 썼다. 오늘의 이 내용도 달리기 기법에 관한 글이 아닌 ‘누구나 달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달리기를 통해 정신까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 평범한 60세 러너의 마라톤 일지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달린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듯이 내게도 어릴 적 물고기처럼 수영을 잘하는 꿈과 마라톤에서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마흔을 넘긴 나이에 집 근처 수영장에서 물에 뜨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지금은 제법 수영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고, 나이 오십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골인함으로써 나의 두 개의 꿈을 모두 이루었다.
  
  오십 나이에 마라톤에 도전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이 운명(殞命)할 때 일반적으로 일생을 살면서 해본 것에 대해서는 그것의 성공여부를 떠나 후회하지 않으나 해보지 못한 것,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등에 대해서는 많은 회한(悔恨)을 남긴다고 한다. 
  
  나도 어떠한 것이든 그것이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라면 안 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자에게 그만큼 많은 성공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할 때마다 나는 나와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한다. 
  
  너, 왜 이 고생하면서 뛰고 있니?
  
  너, 무얼 위해서 뛰니?
  
  너, 오늘 포기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고 또 이루어낸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반대로 목표도 없고 도전도 없는 삶, 그것은 정말 무미건조한 삶일 것이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이며 러너인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은 그의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내가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달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런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런 힘든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를 늘 생각해 본다. 건강을 위해서인가, 목표에 도전하고 이룬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달리기 그 자체의 쾌감 때문인가. 모두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달리면서 내가 달리는 이유를 또 하나 찾아냈다. 바로 인간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 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아끼며 돕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임을 모든 사람이 깨달을 때 진정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레이스 도중에 만난 다정한 노부부, 외팔 달림이, 시각장애인, 외국인, 자원봉사자 등 모두 한결같이 더 없이 소중한 인격체로 각자 너무 멋있게 또 열심히 살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계속 달리기만 한다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 달릴 때의 고통과 함께 뛰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들과 동지적 관계에서 함께 달린다는 감동과 42.195km를 무사히 완주하였을 때의 희열 등 달리면서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무작정 그냥 달려서는 안 된다.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 글로 인하여 나는 계속 달릴 수 있게 되고, 누군가가 마라톤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할 수 있는 글들을 남겨야 한다. 나처럼 모르고 달리는 것보다는 내 글로 인해 미리 무언가 알고 준비하고 달린다면 훨씬 더 쉽지 않을까? 수도자들은 극도의 고행을 통해 득도를 한다. 마라토너들도 역시 참기 힘든 고통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달리는 목적이 아닐까?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글귀가 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당신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가 당신의 한계이고 그것이 당신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초상의 아름다움입니다.>
  
  
  마라톤에서 만난 사람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아마추어 마라톤 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많은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말들이 많다. ‘물은 중간지점에서 한 모금, 모자라면 마지막 테이블에서 또 한 모금 마셔라’, ‘첫 한 모금은 마시지 말고 뱉어라’, ‘맹물만 마시지 말고 이온음료와 번갈아 가면서 마셔라’, ‘어느 한쪽 발목에만 지나치게 많은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도로의 좌우 측을 번갈아 가면서 달려라’, ‘다리는 약간 구부린 채로 발꿈치부터 착지하라’, ‘허리는 곧게 펴고, 시선은 전방 30m 정도를 바라봐라’, ‘팔은 90도 각도로 L자를 유지한 채 가볍게 쥔 주먹이 허리 밑 골반을 스치도록 하라’, ‘팔은 사다리 모양으로 교차하여 두 주먹 간의 간격을 15cm 정도 유지하라’ 등 그들의 충고는 한도 끝도 없다. 
  
  다 가슴에 소중히 담아야 할 내용들이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 자동적으로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이 중에서 내게 가장 적합한 자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치 바둑에서 정석은 알고 잊어버리라고 하듯이 운동에서도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얼마나 빨리 찾아 이를 자동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게 어찌 마라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인생살이에서도 다 필요한 내용들 아니겠는가?
  
  마라톤은 4계절마다 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초가을 한강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다. 특히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주로에서 바라본 풍광은 올림픽대로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는 그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자연 속에서 한강을 달리고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다. 
  
  마라톤을 뛰면서 불현듯 칠순에 마라톤에 도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이창덕 선배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는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기계체조, 복싱, 축구, 테니스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 번째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기록이 1시간44분대의 믿지 못할 기록을 세우고 드디어 오늘 풀코스 완주를 함으로써 마라톤 데뷔전을 성공리에 마친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는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이제까지 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달리기가 최고야. 앞으로도 계속 달릴 거야.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이다. 
  
  이창덕 선배와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해 여름철에 있었던 마라톤 대회 때 일어난 일로 그날은 더위를 피해 오후 5시에 마라톤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이창덕 선배가 갑자기 오전에 전화를 해서 “함께 출전하지 못하니 혼자 열심히 달려라”고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대회에 참석하여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발 20분 전에 이 선배가 부인과 함께 대회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고는 동행한 부인에게 갑자기 오늘 50km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부인은 허를 찔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데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 선배는 부인의 얼굴을 살피더니 승낙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듯 그 길로 달릴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길었다고 한다. 마라톤 신청 때, 부인을 비롯한 가족의 반대가 워낙 심해 그만 아쉽게도 포기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철인(鐵人) 같은 분이시지만 칠순의 연세인지라 나로서도 50km 경주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어서 강하게 권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달릴 준비를 갖춘 채 일단 대회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 더운 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많은 건각을 보면서 그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으로부터 치솟아올라 도전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마라톤의 벽을 넘기 위해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아무도 말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선배는 그날 대망의 50km 마라톤 완주를 하게 되었다.
  
   그는 그 후 매 대회에 임하면서 결연한 각오와 자세를 표한다. 어느 날 가족을 포함한 몇몇 지인에게 출사표를 던진 이 선배의 의지 표현을 보자. 
  
  “벌써 고희의 나이에 50km 한 번, 42.195km 여섯 번, 21.0975km 일곱 번을 한 번도 기권하지 않고 완주했으니 나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어깨가 절로 으쓱거려진다. 대회마다 마의 벽인 후반에서는 인간 체력의 한계선을 넘나드는 반갑지 않은 고통이란 손님 때문에 내가 달리는지 남이 달리는지조차도 모를 정도의 마비 지경을 느끼곤 한다. 이 세상인가, 저 세상인가조차도 구분이 안 될 무념의 경지에 이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마음으로 오로지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는다. 
  
  더군다나 티 한 점 없이 선하고 착한 사랑하는 예쁜 나의 아내가 골인지점 통제요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최선을 다한 후 건강한 모습과 좋은 기록을 나의 가까운 여러분에게 선사하고, 결승점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따스한 아내 가슴에 포근히 안기련다.”
  
  또 한 사람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81세 최근우씨를 소개하고 싶다. 그날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이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55세 때 중병을 앓고 난 후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후 이제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고 달리기 예찬에 열을 올린다. 그는 58세 때 10km를 35분에 달렸고, 60대에 서브-3을 했을 정도로 달리기 고수다. 79세 때인 2002년 동아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완주했으며 요즘도 매일 5km를 달린다고 한다. 최근우씨를 보면서 마라톤의 나이 한계는 몇 살일까를 생각해 본다.
  
  또 한 사람 박영숙 여사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1년여 전인 작년 4월, 내 권유로 10km 대회에 처녀 출전해 완주했던 분이다. 그 후 몇 차례 10km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를 했고 오늘은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에 함께 참가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꾸준히 키워온 결과 오늘 하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환점 부근부터 박 여사의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박 여사는 오직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만이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여 km를 달려 그야말로 비몽사몽 그 자체였다. 그래도 잘 참고 달려서 결국 힘겹게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게 된 데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여사가 딸에게 ‘네가 UCLA에 입학하면 엄마가 하프를 완주하겠노라’고 약속하였는데 얼마 전 딸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엄마의 집념이 하프를 완주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어느 가을비 맞으며 치른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분도 한 분 계셨다. 그날도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예사롭지 않게 달리고 있는 선수를 보게 되었다. 그는 왼쪽 발목이 아주 불편한 사람으로 양발에 신고 있는 운동화도 제각각이었다. 
  
  지난번 대회에서는 팔이 불편한 사람이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달리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목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보면서 두 팔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의 “달리기는 위험한 운동이고 나에게 맞지 않아 못하겠다”는 달리기 불가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존경과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달렸다. 또한 대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시각장애인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치지 않고는 못 할 짓이 바로 마라톤이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선수들 얼굴은 모두 밝다. 자기가 좋으니까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서 하라면 하겠는가. ‘미쳐야 미치고 미치지 않고는 못 미친다’는 말대로 바깥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미친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도 모든 마라토너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린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바로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참선이요 철학이다
  
   연습을 많이 하면 레이스가 편하고 연습이 부족하면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게 어찌 운동만이 그렇겠는가? 일 년 중에 마라톤에 적당한 날이 며칠이나 있을까? 
  
  오늘 대회에 참가한 나는 몸이 너무 무거운 것을 느낀다. 지난번 대회에 참가할 때는 몸이 가벼웠는데 연습이 너무 부족하였다. 올 6월까지 상반기 평균이 월 140km인 데 반해 지난 7, 8월 두 달간은 고작 90km를 달렸으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야 혹서기에다 비도 많이 오고 핑곗거리를 찾자면 한이 없지만 아무튼 연습부족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하루다. 
  
  몸이 무겁다고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저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결국 골인지점이 보인다. 골인지점이 보이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게 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순간만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하늘을 나닐 듯이 달린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바로 이 순간을 맛보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몸을 견디며 열심히 달렸던 것 아닌가.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뿌린 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도저히 뛸 수가 없어 ‘걸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치 휘발유가 다 떨어진 자동차가 ‘푸식 푸시식’하면서 서버리듯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현지 지리도 잘 모르고 주최 측에서 제공한 코스 높낮이만 철석같이 믿고 그 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예상 밖 오르막과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오르막을 만나게 되면 아예 달릴 엄두가 안 나 걷게 된다. 처음 걷기가 힘들지 한 번 걷기 시작하면 언덕만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걷게 된다. 힘 있을 때 같으면 박차고 오를 정도이건만 체내 모든 에너지가 다 고갈돼 그럴 힘이 없을 때는 단 한 걸음도 뛰기가 어렵다. 
  
  마라톤은 그야말로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실력을 충실하게 쌓는 것은 기본이고 그날그날의 기온, 습도, 풍향 등을 고려해 레이스를 탄력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라톤처럼 단순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경기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나는 대회 때마다 그때에 맞는 화두를 정해 정신을 집중하곤 한다. 나는 수능시험을 볼 딸 준영이도 생각해 보고 군에 가 있는 아들 준일이의 건강과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기도 하며 그렇게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족 간의 애틋한 일들을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한결 정신이 맑아진다.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늘 새로운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레이스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때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 1968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앰비 버풋(Amby Burfoot)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나는 달리기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실패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달리기에서는 속도나 금메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어려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사실 무한하다. 절대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진정 승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가는 길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목표를 이루는 법은 없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승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해볼 것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자기에게 적합한 속도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속도보다 빨리 가는 것은 물론 어렵지만 그렇다고 천천히 달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의 많은 연습과 훈련이 모든 자율신경을 통해 체내에 입력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參禪)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갑자기 근육이 경직되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만 저절로 서버리는 경우가 많다. 쥐가 나는 경우다. 쥐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경우 ‘아! 이래서 마라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그간 너무 자신을 과신한 것에 대한 회한이 가슴 한가운데로부터 스며 나온다. 과연 내가 마라톤을 진정 겸손하게 대했나. 마라톤을 할 만큼 연습이 충분했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때면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걷기조차 힘들 때에는 스프레이를 찾아 뿌려보고, 갓길로 나가 스트레칭도 해보고, 뒤로 걷는 것이 좋다는 말에 따라 뒤로 걸어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 그럴 때 회송차량이 지나간다면 타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차도 안 오고 또 기어서 가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걸으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연도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게 된다. 한번은 내 배번까지 부르며 파이팅을 외치던 한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에 끝까지 완주한 적이 있다.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마라토너들처럼 직접 달리는 것도 즐겁지만 자원봉사는 더 행복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달리기에만 참가하고 한 번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왜 달리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달리기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다.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이루 꼽을 수 없지만 그중 건강과 친구가 다른 어느 것보다 앞설 것이다. 실로 건강해졌고, 또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할 때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하라고 한다. 달리는데 덜 지루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은 마치 전생에 무슨 인연이나 있었던 것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 단지 달리기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이웃사촌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마라톤은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여기에 만용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마라톤은 진실된 삶의 성숙한 성스러운 행위이다.” 뉴욕마라톤 우승자인 케냐 출신의 더글러스 와키후리의 말과 같이 마라톤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종교만큼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마라토너를 마스터(master), 러너(runner), 조거(jogger)로 구분해 놓았다. 발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 힘들지 않게 달릴 때를 마스터라 하고, 발과 마음으로 달리는 사람을 러너, 발로만 달리는 사람을 조거라고 표현한다. 나는 지금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리고 있을까? 
  
  1930년대 미국의 1마일 경주 선수 글렌 커닝엄(Glenn Cunningham)은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다른 선수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적이 아니다. 뛰어넘어야 할 대상은 자기 안에 있다. 머리와 가슴에서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또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마라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행하고 싶다.⊙

한국 감동시킨 일본인 며느리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느낀 지 가 얼마나 되었는지요? 아니면 남에게 진한 감동을 준 적은 언제였는지요? 감동을 많이 느끼거나 감동을 많이 주는 일이 행복한 일인데 그런 일들을 많이 만드는 하루 만듭시다. 행복하세요. https://yout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