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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의 행복편지 - 월간조선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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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호
[박시호의 행복편지] 노부부의 처절한 인생 / 부부의 사랑 이야기 / 아내의 저녁준비 / 이불 한 채의 사랑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우리 부부는 변두리에서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하기도 했습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라며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라는 아내의 대답에 나는 “부부가 뭣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는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각자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오늘 따라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그런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조금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물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허탈하면서도 씁쓰레한 미소로만 웃어 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하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어.”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왜 나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냐고 나 혼자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다고 …. 하도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병에 걸려 먼저 돌아가셨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천장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
“야속한 사람, 왜 나만 남겨두고 먼저 떠났어! 가려거든 나도 함께 데려가지 …. 자식들 다 소용없어 …. 어려서 갖은 고생 다 하면서 키웠지만 다들 결혼하고 나면 마누라한테 잡혀서 기도 펴지 못하고 잡혀 살고 있잖아?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애지중지 키웠는지 애들은 알지 못하나 봐. 나중에 자기들도 늙고 병들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지 ….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도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어 …. 부모는 불편하고 방해만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식들한테 하는 것 봐봐. 그것 반만이라도 부모에게 신경써 주면 이런 일들은 없을 텐데 …. 자식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런 것을 왜 진작 모르고 살았을까? ….”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 이 내용은 신정남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나이 스물여덟, 남자는 어느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요.
나이 스물여섯,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성당에서 조촐한 출발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요. … 그때,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었어요.
그들이 살던 자그마한 집에 그만 불이 났답니다. 그 불로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이 만들어 갈 그 수많은 추억들을 이제는 더 이상 아내가 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 후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에 있었죠.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남편은 곁에서 아내를 도와주었지요. 처음엔 아내가 많이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답니다.
늘 그것이 미안했었나 봐요. 당신을 그 불 속에서 구해 내지 못한 것이 ….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말이에요. ….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적응을 하였지요.
그리고 이제서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 하나 남은 세상의 목발이 되어 주고 있음을 알게 된 거죠. 이젠 다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이젠 둘은 아무 말 없이 저녁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편안한 나이가 되어 갔답니다.
시간은 그들에게 하나둘씩 주름을 남겨 놓았지요.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여전히 벨벳처럼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생겨났지요.
남편은 이제 아내의 머리에 난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답니다.
“이제 겨우 8월인데 당신의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렸군. ….”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왠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한답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죠.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나, 당신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군요. ….”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말을 전했답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남편이었지요.
아내는 많이 슬퍼했답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 더 많이 말이에요.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하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 주는 것이랍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거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 말이죠.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이제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머리에 가득 내려앉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당신에게 지금보다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 줄 수도 있었는데 ….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
아직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너무나 늙어 버렸다는 것을 ….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었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게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 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소.
또한 우리 생활의 어려움과 세상의 모진 풍파도 말이오. 난 당신이 나의 그 지난 시절 내 미소를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소.
지금의 나의 흉한 모습보다는 ….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 주지 못하지만 늘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이제는 환하게 변해 버린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를 바라오.
아내는 정말로 하얗게 변해 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답니다.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측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 주던 그 미소를 지어 줄 수 없다는 것도 ….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내가 당신의 그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난 당신의 마음 이해하니까 말이에요. 참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하늘로 되돌아갔답니다.
※ 이 내용은 정영진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오늘도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인력시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호가 경기 침체로 인해 공사장 일을 못한 지도 벌써 넉 달이나 흘렀다. 요즈음에는 인력시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루의 일자리도 찾지를 못하고 가랑비 속을 서성거리다 쓴 기침 같은 절망을 안고 뿔뿔이 흩어지기가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남편이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자 정호의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으로 일을 다니며 정호 대신 힘겹게 가계를 꾸려 나가고 있지만, 그것도 살림에는 그리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한 초라한 밥상에서 정호는 늘 죄스러운 한숨만 내뱉을 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 밉다. 그래도 정호는 무언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아이들만 집에 남겨 두고 다시 집을 나섰다. 목이 긴 작업신발 속에 발을 밀어 넣으며 끝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주인집 여자를 만날까 봐 발소리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 달째 밀려 있는 집세를 생각하면 그는 어느새 고개 숙인 난쟁이가 되어 버렸다.
저녁 즈음에 오랜 친구를 만나 일자리를 부탁했다. 친구는 일자리 대신 삼겹살에 소주를 샀다. 술에 취해 고달픈 삶에 취해 산동네 언덕길을 오를 때 야윈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던 무수한 별빛들. 집 앞 골목을 들어서니 귀여운 딸아이가 그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해 먹는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아빠 기다렸어.”
일을 나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 주라고 이렇게 고기를 싸 주셨어요. 그러지 않아도 영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반찬 해 달라고 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집세도 못 내면서 고기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에야 저녁준비 한 거예요. 열한 시 넘었으니까 다들 주무시겠죠. 뭐.”
불고기 앞에서 아이들의 입은 꽃잎이 됐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행복해했다.
“천천히들 먹어. 잘 자리에 체할까 겁난다.”
“엄마. 내일 또 불고기 해줘, 알았지?”
“내일은 안 되고 엄마가 다음에 또 해줄게. 우리 영준이 고기 먹고 싶었구나?”
“응 ….”
아내는 어린 아들을 달래며 정호 쪽으로 고기 몇 점을 옮겨 놓았다.
“당신도 어서 드세요.”
“나는 아까 친구 만나서 저녁 먹었어. 당신이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정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가엾은 아내 ….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주인이 준 게 아니었다. 숫기 없는 아내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이다. 아내가 구워 준 고기 속에는 누군가 씹던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 채 섞여 있었다. 아내가 볼까 봐, 정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서 삼켜 버렸다. 아픈 마음을 꼭꼭 감추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착한 아내의 마음이 찢어질까 봐. ….
정호는 늦은 밤. 아내의 구두를 닦는다. 별빛보다 총총히 아내의 낡은 구두를 닦으며 내일의 발걸음은 지금보다 가볍고 빛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이철환님의 글입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누라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 … 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라고 묻자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이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결혼하자마자 첫살림을 살던 그 문간방.”
지금 생각하면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고, 수도관이 터져 밥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안식처였습니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볼까?”
숟가락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 단꿈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내의 기억 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이렇게 높았었나?”
남편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 그땐 이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겨서 우리 부부는 멍한 상태에서 옛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돈은 없었지만 둘만 있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었고, 아이들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이 세상에 우리 부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 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한 이불 보따리 속에는 이불보다 따뜻한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행복하게 사세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허름한 변두리의 작은 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새삼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 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이 내용은 김도용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연재 끝-
2012. 8. 27.
월간조선 9월호 - 박시호의 행복편지 -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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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호
박시호의 행복편지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
[편집자 주]
이 내용은 어느 평범한 60세의 마라토너 허정회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저서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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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이 내용은 어느 평범한 60세의 마라토너 허정회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저서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달리기 세상’에 입문한 지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마라톤 72회, 하프마라톤 26회 등 나름 부지런히 달렸다. 훈련을 위해 달린 것까지 환산하면 적어도 1만km는 될 것 같다. 1년에 1000km 정도 달린 꼴이다.
우리나라 마라톤 인구는 약 5만명으로 추산된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소위 메이저 대회에 2만여 명씩 참가하는 것으로 가늠해 볼 때 그 배 이상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 중 0.1%가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달릴까? 아마 답은 각인각색(各人各色)일 것이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가끔 당신은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묻는다. 나는 산을 닮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風光) 등 모든 걸 다 내주면서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절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인간이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내면 가끔씩 혼내주어 경종을 울린다.
나는 마라톤을 닮고 싶기에 달린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곧잘 마라톤과 견준다. 긴 여정(旅程), 오르내리막이 있는 코스, 이탈할 수 없는 주로(走路), 역전과 재역전의 연속, 달릴 때의 고통과 완주의 기쁨 등 마라톤에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동물의 종(種)에 따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나 능력이라고 한다. 이를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Emil Zatopek·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5000m, 1만m 우승자)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라고 표현했다.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적확(的確)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 수영은 학습이지 본능은 아닌 것이다. 걸을 수 있는 아이에게 달리기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사람들에게 달리기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하면 선뜻 수긍하지 않다가도 이 말을 들으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달리기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최적의 운동이다.
달리기는 행복이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아침 양재천에 나가 달린다. 밤잠을 설쳐도 새벽 다섯 시 경이면 운동화끈을 매고 집을 나선다. 양재천의 주인인 새와 곤충과 물고기가 객(客)을 반긴다. 달리면 무상무념(無想無念)해진다. 근심은 인간을 동요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근심을 유발하는 거짓된 생각이 달리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낡고 나쁜 생각은 나가고 새롭고 좋은 생각이 우리 몸에 스며든다. 운동 중에서 가장 단순한 운동인 달리기와 걷기가 인간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낀다.
달리기는 자유다. 나는 출장 갈 때 잊지 않고 반드시 챙기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수영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운동화다. 호텔을 정하면 사전에 인근 조깅 코스를 물색하고 마땅치 않으면 호텔 내 수영장을 찾는다. 그것도 시원치 않으면 할 수 없이 헬스클럽 내 트레드밀에서 몸을 푼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할 때면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 같아서 답답하다. 자연에서 달릴 때 진정 자유인임을 느낀다. 달리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살고 그들을 닮고 싶기를 기원한다.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다. 나는 최근 지난 10년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후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다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린다》로 했다.
달리기 초기 나는 마라톤은 발, 즉 몸만 튼튼하면 완주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달리면 달릴수록 마라톤은 따뜻한 마음과 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발과 마음과 혼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조화롭게 작동되어야만 마라톤 완주가 가능한 것이다.
큰 대회에서 달리다 보면 시각장애인을 비롯해 양팔이 없는 사람 등 많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 못지않게 달리는 걸 자주 본다.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소위 비장애인들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인간의 본능인 달리기를 멀리하고 있는데 대체 그들은 왜 달리는 것일까.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달리기는 도전이다. 마라톤은 42.195km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100리가 넘는 먼 거리다. 달리면 달릴수록 멀게 느껴진다. 강한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대회에서 30km 이후 그날 처음 달린다는 아주 힘들어 하는 주자를 종종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오늘 기어서라도 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마라톤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전조차 못 할 것이라고….
마라톤은 누구에게나 힘이 드는 경주다. 이봉주 선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제롬 드레이턴(Jerome Drayton·캐나다 출신의 197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은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마라톤을 할 때 느끼는 고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마치 태어나면서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달리게 되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 나는 재미가 없어 달리기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운동이 너무나 많다. 나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중에 대부분은 조금씩 해보았다. 내가 달리기를 안 했던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10년 전,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하다가, 귓병 때문에 수영을 할 수 없게 돼 잠시 달리기를 하다 지금은 이렇게 ‘달리기 전도사’가 되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내 건강상태는 오히려 더 양호해졌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하게 된 이후 체중은 10kg이나 줄었다.
내가 마라톤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얘기다. 사람은 원래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잘 못 맡는 법인데, 한 30km 정도 지나면서 내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곤 했다. 그런 악취는 한 열 번쯤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나더니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몸 안에 있던 각종 노폐물 등이 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정도 거리에 가면 다른 사람 몸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러한 노폐물들이 암의 뿌리가 되는 게 아닐까 미뤄 생각해 본다.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이것은 자전거가 아닙니다》라는 책에서, 이 책은 자전거 타는 기술에 대해 다룬 책이 아니라, 암에 걸린 저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절망하지 않고 암을 극복하는 투병기라고 썼다. 오늘의 이 내용도 달리기 기법에 관한 글이 아닌 ‘누구나 달릴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달리기를 통해 정신까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 평범한 60세 러너의 마라톤 일지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달린다
오십 나이에 마라톤에 도전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람이 운명(殞命)할 때 일반적으로 일생을 살면서 해본 것에 대해서는 그것의 성공여부를 떠나 후회하지 않으나 해보지 못한 것, 꿈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 등에 대해서는 많은 회한(悔恨)을 남긴다고 한다.
나도 어떠한 것이든 그것이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라면 안 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자에게 그만큼 많은 성공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할 때마다 나는 나와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한다.
너, 왜 이 고생하면서 뛰고 있니?
너, 무얼 위해서 뛰니?
너, 오늘 포기하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고 또 이루어낸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반대로 목표도 없고 도전도 없는 삶, 그것은 정말 무미건조한 삶일 것이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이며 러너인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은 그의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내가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달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런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런 힘든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를 늘 생각해 본다. 건강을 위해서인가, 목표에 도전하고 이룬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달리기 그 자체의 쾌감 때문인가. 모두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달리면서 내가 달리는 이유를 또 하나 찾아냈다. 바로 인간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 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아끼며 돕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임을 모든 사람이 깨달을 때 진정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레이스 도중에 만난 다정한 노부부, 외팔 달림이, 시각장애인, 외국인, 자원봉사자 등 모두 한결같이 더 없이 소중한 인격체로 각자 너무 멋있게 또 열심히 살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계속 달리기만 한다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 달릴 때의 고통과 함께 뛰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들과 동지적 관계에서 함께 달린다는 감동과 42.195km를 무사히 완주하였을 때의 희열 등 달리면서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무작정 그냥 달려서는 안 된다.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 이 글로 인하여 나는 계속 달릴 수 있게 되고, 누군가가 마라톤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할 수 있는 글들을 남겨야 한다. 나처럼 모르고 달리는 것보다는 내 글로 인해 미리 무언가 알고 준비하고 달린다면 훨씬 더 쉽지 않을까? 수도자들은 극도의 고행을 통해 득도를 한다. 마라토너들도 역시 참기 힘든 고통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달리는 목적이 아닐까?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글귀가 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당신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가 당신의 한계이고 그것이 당신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초상의 아름다움입니다.>
마라톤에서 만난 사람들
다 가슴에 소중히 담아야 할 내용들이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 자동적으로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이 중에서 내게 가장 적합한 자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치 바둑에서 정석은 알고 잊어버리라고 하듯이 운동에서도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얼마나 빨리 찾아 이를 자동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게 어찌 마라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인생살이에서도 다 필요한 내용들 아니겠는가?
마라톤은 4계절마다 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초가을 한강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다. 특히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주로에서 바라본 풍광은 올림픽대로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는 그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자연 속에서 한강을 달리고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다.
마라톤을 뛰면서 불현듯 칠순에 마라톤에 도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이창덕 선배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는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에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기계체조, 복싱, 축구, 테니스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 번째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기록이 1시간44분대의 믿지 못할 기록을 세우고 드디어 오늘 풀코스 완주를 함으로써 마라톤 데뷔전을 성공리에 마친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는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내가 이제까지 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달리기가 최고야. 앞으로도 계속 달릴 거야.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이다.
이창덕 선배와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해 여름철에 있었던 마라톤 대회 때 일어난 일로 그날은 더위를 피해 오후 5시에 마라톤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 이창덕 선배가 갑자기 오전에 전화를 해서 “함께 출전하지 못하니 혼자 열심히 달려라”고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대회에 참석하여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출발 20분 전에 이 선배가 부인과 함께 대회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고는 동행한 부인에게 갑자기 오늘 50km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부인은 허를 찔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데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 선배는 부인의 얼굴을 살피더니 승낙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듯 그 길로 달릴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때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길었다고 한다. 마라톤 신청 때, 부인을 비롯한 가족의 반대가 워낙 심해 그만 아쉽게도 포기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철인(鐵人) 같은 분이시지만 칠순의 연세인지라 나로서도 50km 경주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어서 강하게 권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부인의 눈치를 보다가 달릴 준비를 갖춘 채 일단 대회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 더운 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많은 건각을 보면서 그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으로부터 치솟아올라 도전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마라톤의 벽을 넘기 위해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들기 전에 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아무도 말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선배는 그날 대망의 50km 마라톤 완주를 하게 되었다.
“벌써 고희의 나이에 50km 한 번, 42.195km 여섯 번, 21.0975km 일곱 번을 한 번도 기권하지 않고 완주했으니 나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어깨가 절로 으쓱거려진다. 대회마다 마의 벽인 후반에서는 인간 체력의 한계선을 넘나드는 반갑지 않은 고통이란 손님 때문에 내가 달리는지 남이 달리는지조차도 모를 정도의 마비 지경을 느끼곤 한다. 이 세상인가, 저 세상인가조차도 구분이 안 될 무념의 경지에 이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마음으로 오로지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는다.
더군다나 티 한 점 없이 선하고 착한 사랑하는 예쁜 나의 아내가 골인지점 통제요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최선을 다한 후 건강한 모습과 좋은 기록을 나의 가까운 여러분에게 선사하고, 결승점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따스한 아내 가슴에 포근히 안기련다.”
또 한 사람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81세 최근우씨를 소개하고 싶다. 그날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이다. 지금부터 27년 전인 55세 때 중병을 앓고 난 후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였는데 그 후 이제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고 달리기 예찬에 열을 올린다. 그는 58세 때 10km를 35분에 달렸고, 60대에 서브-3을 했을 정도로 달리기 고수다. 79세 때인 2002년 동아마라톤에서는 풀코스를 완주했으며 요즘도 매일 5km를 달린다고 한다. 최근우씨를 보면서 마라톤의 나이 한계는 몇 살일까를 생각해 본다.
또 한 사람 박영숙 여사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1년여 전인 작년 4월, 내 권유로 10km 대회에 처녀 출전해 완주했던 분이다. 그 후 몇 차례 10km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를 했고 오늘은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에 함께 참가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꾸준히 키워온 결과 오늘 하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환점 부근부터 박 여사의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박 여사는 오직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만이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여 km를 달려 그야말로 비몽사몽 그 자체였다. 그래도 잘 참고 달려서 결국 힘겹게 하프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였는데 본인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게 된 데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여사가 딸에게 ‘네가 UCLA에 입학하면 엄마가 하프를 완주하겠노라’고 약속하였는데 얼마 전 딸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엄마의 집념이 하프를 완주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어느 가을비 맞으며 치른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분도 한 분 계셨다. 그날도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앞에서 예사롭지 않게 달리고 있는 선수를 보게 되었다. 그는 왼쪽 발목이 아주 불편한 사람으로 양발에 신고 있는 운동화도 제각각이었다.
지난번 대회에서는 팔이 불편한 사람이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달리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목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보면서 두 팔 두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의 “달리기는 위험한 운동이고 나에게 맞지 않아 못하겠다”는 달리기 불가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존경과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달렸다. 또한 대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시각장애인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라톤은 어느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치지 않고는 못 할 짓이 바로 마라톤이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선수들 얼굴은 모두 밝다. 자기가 좋으니까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서 하라면 하겠는가. ‘미쳐야 미치고 미치지 않고는 못 미친다’는 말대로 바깥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미친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도 모든 마라토너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린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바로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참선이요 철학이다
오늘 대회에 참가한 나는 몸이 너무 무거운 것을 느낀다. 지난번 대회에 참가할 때는 몸이 가벼웠는데 연습이 너무 부족하였다. 올 6월까지 상반기 평균이 월 140km인 데 반해 지난 7, 8월 두 달간은 고작 90km를 달렸으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정이야 혹서기에다 비도 많이 오고 핑곗거리를 찾자면 한이 없지만 아무튼 연습부족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하루다.
몸이 무겁다고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저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결국 골인지점이 보인다. 골인지점이 보이면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게 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순간만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하늘을 나닐 듯이 달린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바로 이 순간을 맛보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몸을 견디며 열심히 달렸던 것 아닌가.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뿌린 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도저히 뛸 수가 없어 ‘걸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마치 휘발유가 다 떨어진 자동차가 ‘푸식 푸시식’하면서 서버리듯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현지 지리도 잘 모르고 주최 측에서 제공한 코스 높낮이만 철석같이 믿고 그 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예상 밖 오르막과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오르막을 만나게 되면 아예 달릴 엄두가 안 나 걷게 된다. 처음 걷기가 힘들지 한 번 걷기 시작하면 언덕만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걷게 된다. 힘 있을 때 같으면 박차고 오를 정도이건만 체내 모든 에너지가 다 고갈돼 그럴 힘이 없을 때는 단 한 걸음도 뛰기가 어렵다.
마라톤은 그야말로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실력을 충실하게 쌓는 것은 기본이고 그날그날의 기온, 습도, 풍향 등을 고려해 레이스를 탄력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라톤처럼 단순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경기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나는 대회 때마다 그때에 맞는 화두를 정해 정신을 집중하곤 한다. 나는 수능시험을 볼 딸 준영이도 생각해 보고 군에 가 있는 아들 준일이의 건강과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기도 하며 그렇게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족 간의 애틋한 일들을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한결 정신이 맑아진다.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늘 새로운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레이스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때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 1968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앰비 버풋(Amby Burfoot)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나는 달리기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실패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달리기에서는 속도나 금메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어려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사실 무한하다. 절대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진정 승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가는 길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목표를 이루는 법은 없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승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해볼 것이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자기에게 적합한 속도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속도보다 빨리 가는 것은 물론 어렵지만 그렇다고 천천히 달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의 많은 연습과 훈련이 모든 자율신경을 통해 체내에 입력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參禪)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달리다 보면 갑자기 근육이 경직되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만 저절로 서버리는 경우가 많다. 쥐가 나는 경우다. 쥐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경우 ‘아! 이래서 마라톤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그간 너무 자신을 과신한 것에 대한 회한이 가슴 한가운데로부터 스며 나온다. 과연 내가 마라톤을 진정 겸손하게 대했나. 마라톤을 할 만큼 연습이 충분했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때면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걷기조차 힘들 때에는 스프레이를 찾아 뿌려보고, 갓길로 나가 스트레칭도 해보고, 뒤로 걷는 것이 좋다는 말에 따라 뒤로 걸어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 그럴 때 회송차량이 지나간다면 타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차도 안 오고 또 기어서 가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걸으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연도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게 된다. 한번은 내 배번까지 부르며 파이팅을 외치던 한 자원봉사자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에 끝까지 완주한 적이 있다.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마라토너들처럼 직접 달리는 것도 즐겁지만 자원봉사는 더 행복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달리기에만 참가하고 한 번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왜 달리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달리기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다.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이루 꼽을 수 없지만 그중 건강과 친구가 다른 어느 것보다 앞설 것이다. 실로 건강해졌고, 또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할 때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하라고 한다. 달리는데 덜 지루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은 마치 전생에 무슨 인연이나 있었던 것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 단지 달리기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이웃사촌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마라톤은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여기에 만용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마라톤은 진실된 삶의 성숙한 성스러운 행위이다.” 뉴욕마라톤 우승자인 케냐 출신의 더글러스 와키후리의 말과 같이 마라톤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종교만큼 성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마라토너를 마스터(master), 러너(runner), 조거(jogger)로 구분해 놓았다. 발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 힘들지 않게 달릴 때를 마스터라 하고, 발과 마음으로 달리는 사람을 러너, 발로만 달리는 사람을 조거라고 표현한다. 나는 지금 발과 마음과 혼으로 달리고 있을까?
1930년대 미국의 1마일 경주 선수 글렌 커닝엄(Glenn Cunningham)은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다른 선수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적이 아니다. 뛰어넘어야 할 대상은 자기 안에 있다. 머리와 가슴에서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또 마라톤은 스포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참선이요 철학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참선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완주할 수 없는 게 마라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완주만 하면 모두가 승자이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마라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행하고 싶다.⊙
2012. 7. 19.
2012. 7. 17.
2012. 6. 25.
2012. 6. 23.
월간조선 7월호 - 박시호의 행복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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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호
박시호의 행복편지
귤 하나의 사랑 /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엄마는 늘 배가 불러
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저는 결혼을 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사십이 다 되어 결혼을 하여 조금은 늦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았는데 몇 개월 전부터 심각한 이혼의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 하죠. 우리 부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는데 와이프 입에서 종종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일로 지쳐 있던 때라 맞받아쳤고요.
순식간에 각방을 쓰고 말도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 내고, 우는 일이 많아지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며 아내는 더 불같이 화를 냈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움만 하였지요.
저는 가끔 외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아내는 신경도 쓰지 않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어떤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방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더 까먹고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저는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지금 다시 기억해 낸 것입니다.
저는 결혼 후 5년 동안 제 손으로 한 번도 귤을 사들고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그 순간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애할 때 길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이 보이면 꼭 3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 때는 귤을 박스째로 사들고 가던 내가 아내에게는 5년간이나 몇백 원도 안 하는 귤 한 개를 사주지도 않았다니 맘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어느덧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문제와 내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지요.
반면 아내는 저를 위해 철마다 보약을 준비하고, 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만드는 등 참으로 신경 많이 써줬는데 말이지요.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장수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또 귤 한 봉지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귤 하나를 까먹어 보았는데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들어와서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습니다.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 개를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참으로 몇 달 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에게도 몇 알 입에 넣어주고요.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제 모습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나니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피어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냥 출근하려고 하는 저를 아내가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고….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고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남기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나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 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생기더라고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저는 정말 바보 중에도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 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저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귤이든 무엇이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사랑은 양보입니다. 특히 부부간에 싸워서 이긴들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이젠 져주기로 했습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김수락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 남자를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러고 나서 아이까지 둘을 나은 어느 가정주부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수녀가 되려 했던 자기에게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해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지요. 이들이 연년생 둘째를 가졌을 무렵에 남편은 대장암 진단으로 이미 한쪽 대장을 잘라내고 기적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병이 발병하여 암 검사에서 암이 온 내장에 퍼져 올해를 넘기긴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암 치료도 필요치 않고 그냥 환자의 몸을 편하게 해주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굵은 눈물만 흘릴 뿐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생각합니다. 그가 너무 불쌍하다고….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자라온 그가 불쌍하고, 또 그 없이 성장하게 될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무엇보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가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하여 가슴이 아프다고.
아내는 남편에게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그 사실을 차마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간 못했던 사랑을 표현하는 것밖에는…. 그녀는 남편을 위해 힘든 내색을 감추고 밝은 아내와 엄마의 모습으로 남편을 위해 또 자식을 위해 사랑의 힘으로 버팁니다.
남자는 변해가는 몸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자꾸만 악화되어 가고 몇천 그램의 모르핀을 투약해서 이제는 아내의 이름조차 쓰기 힘들 정도로 정신력이 희미해져 갈 뿐만 아니라 또한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고, 배변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남자는 더 해가는 병을 이기고자 강한 마음을 먹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통 속에 스스로 위축되어 갑니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내는 해줄 것이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위로와 포옹 그리고 남몰래 흘리는 눈물뿐….
이젠 남자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남은 기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또한 엄마로서 남는 역할보다 불쌍한 남자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난다는 미안함이 들까 봐 그게 더욱 가슴 아픕니다.
그들은 어느 날 아이들에게 남겨줄 비디오를 함께 찍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추억의 사진을 다시금 꺼내보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러나 사진 속의 아빠 모습을 보면서 예전 같지 않은 현재 모습에 그녀와 아이들은 너무나 슬픕니다.
그는 아내의 눈을 보며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젠 아이들도 아빠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슬퍼합니다. 아빠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딸아이의 울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필름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빠가 왔다고 발을 씻겨주던 딸아이… 손이 아빠만큼 컸다고 으쓱해 하던 아들의 웃음이 먼 일만 같이 느껴지며 눈물이 쏟아집니다. 남자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해 사랑해’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는 지금 그 말 외에는 달리 다른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 후 결국 일인실로 옮긴 남편은 이미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숨 쉬기도 버거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힘을 내어 아내의 손을 잡습니다. 그녀 또한 손을 꼭 모아 잡고 몇십 년은 늙어버린 남편에게 퉁퉁 분 눈으로 마지막 부탁을 해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데 나를 위해 너무 헌신적으로 사랑을 해주었다고….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사랑했지만 제대로 표현도 못 하고…. 떠나게 되어 너무 미안하다고…. 그동안의 잘못 다 용서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눈물로 화답합니다. 당신 살 수 있어요. 힘을 내세요. 제발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혼자 떠나는 아빠를 위로해 드리라며 ‘고맙습니다. 사랑해요’를 일러줍니다. 아내는 홀로 먼 길을 떠날 남편도 불쌍하지만 아빠 없이 남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더 눈물을 흘립니다.
오열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눈물 짙은 ‘사랑해’ 한마디 속에 남자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맙니다.
아아… 마지막… 거친 호흡 속에 이내 가늘어진 숨소리… 그의 숨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순간…
아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입맞춤해 줍니다. 그녀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아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면서 그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의 울음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이 희미해짐을 느끼면서 그들을 두고 가기 싫은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남기고 떠나는 마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만난 그녀는 아직도 남편의 문자와 사진들을 지울 수가 없어 전화기를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내에게 보내준 ‘힘내라 그리고 사랑한다’는 문자들….
그녀 가슴은 여전히 그의 모습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남긴 문자들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어 아이들과 열심히 살 것이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며칠 후 십 년째 맞는 결혼기념일 날.
그녀는 남편의 묘 앞에 와서 외로워하지 말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자기야 사랑한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지금처럼 그를 사랑했다면, 지난 9년간의 결혼생활이 너무나 행복했을 것 같아요. 그가 떠난 후 생각해 보니 왜 그때는 이런 사랑을 해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듭니다. 지금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마음속이나마 영원히 남편과 함께하니까….”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가슴 시린 이별이야기이지만 행복해지기를 빕니다.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신은 왜 갈라놓으셨을까요?
신은 왜 행복한 가정을 훼방을 놓았을까요?
그러나 이들에게 비록 남편이 그리고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지만 하늘나라에서 이 가족을 지켜줄 것입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함께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늘 함께 있을 겁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남편은 그녀와 자식들이 필요할 때에만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함께하며 서로 사랑을 나눌 겁니다.
남편은 고요히 나타나 그들을 감싸며 못다한 사랑을 베풀 겁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마치 만해 한용운님의 시 ‘알 수 없어요’ 처럼….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윤승기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어제는 어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모처럼 형제들이 모여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모두 6남매입니다. 원래는 7남매인데 제 동생은 낳자마자 며칠도 안 돼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6남매가 어렵게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기억은 없으나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 함께 사시다 돌아가셔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산골에서 정말 어렵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6남매를 위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당신 자신보다 자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지요.
그런데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어머니만큼 애틋한 사랑의 정은 없었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엄하기만 하셨고 자식들과 아기자기한 생활이라든지 또한 자식들과 함께 어디를 다녀본 아버지와의 기억은 별로 없을 정도로 어머님과 같은 사랑은 못 느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 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면 학교 가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풀을 베는 일이었습니다. 소죽(소의 밥)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풀을 베어 비축해 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 갔다 오면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떠납니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소가 잘 먹고 힘이 세야만 조그마한 논이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활을 하니 학교생활은 대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기계보다도 더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몸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아플 여유도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지요.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매일같이 소죽과 아침식사를 머리에 이고 소를 이끌고 논으로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자식들만을 생각하며 무쇠같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의 부모들이 과연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힘들고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기억 속의 제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어머님이 모처럼 고향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이 보고 싶다고 하여 저와 함께 이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기 때문에 그날은 어머니가 저를 위해 특별히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하였는데 그런 어머니가 저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이고 없는 살림에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은 아팠지만 그래도 모처럼 먹는 고깃국에 저는 너무나도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우리는 설렁탕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설렁탕이 나오자 어머니는 제게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고기 대신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끔 쳐다보며 국물을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라고 내 뚝배기로 어머니 뚝배기를 툭 쳤습니다. 순간 뚝배기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리 크게 들리며 그 소리가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이 안 들도록 조심스럽게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어린 마음에 창피함과 서러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는 얼른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닦아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걱정만 하시면서 자꾸 많이 먹으라며 당신은 배가 부르니 걱정하지 말고 얼른 먹으라며 자꾸 국물을 따라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물과 국물이 범벅이 된 설렁탕 국물을 먹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국물이 짠 걸까? 눈물이 짠 걸까?
그 당시의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난하여 고기 한 번 먹기 어려운 시기에 늘 배가 부르다, 입맛이 없다…. 자식들 먹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시면서 나는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저는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린 사람들은 크느라고 늘 배가 고프지만 어른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결혼하여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나의 어머니보다 나의 자식들을 더 잘 키우고 있나 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만큼 나도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왜 나는 늘 부족할까.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지금에야 어머니의 은덕을 생각하면 무얼 하나? 살아계실 동안 효도를 다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이제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살던 우리는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은 생각해 보면 자식들을 위해 하루 장사거리를 떼러 새벽기차를 타고 먼길을 다니며 우리를 키웠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조차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종일 힘든 노동을 하면서 늘 자식 하나 잘되기 바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있으면 무엇이든 시장에 내다 팔아 단돈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당신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지요. 그 당시의 겨울은 왜 그다지도 추웠던지, 또 왜 그리 아이들은 많이 낳았는지, 늘 어머니들은 등에 갓난아이들을 업고 다녔지요. 그때 배운 것이 바로 사랑은 몸과 몸으로 전달되는 따스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은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 잘해서 오늘의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보도를 통해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 또는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들을 볼 때면 그들도 곧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난 후 부모님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을 때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때 후회를 한들 이미 소용없는 일인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할까요? 언젠가 행복편지를 통해 본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가 생각납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 다오.
늙어서 우리가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늙어서 우리가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못 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를 목욕시키려고 따라다니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니?
혹시 우리가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무심하거든 전 세계에 연결되어 있는 웹사이트를 통하여 그 방법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다오. 우리는 네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는지 아느냐? 상한 음식 먹지 않는 법, 옷을 어울리게 잘 입는 법, 너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 등….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또 우리가 먹기 싫어하거든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려고 하지 말아다오. 언제 먹어야 하는지 혹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단다.
다리에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겠니?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화내지 말아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인이 된 우리의 나이는 그냥 단순히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를 말하고 있음을 이해해 다오.
비록 우리가 너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 가족 윤상현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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