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30.
2015. 1. 21.
2014. 2. 5.
내 친구 사진작가 김중만 - 서울아트 가이드 - 내마음속의 미술 - 박시호 칼럼
내 친구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하던 중 사진을 하는 친구의 암실작업을 돕다가 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입혀지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사진을 시작한다.
그는 프랑스 젊은 작가상을 타고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 후 1985년, 1986년 두 차례 국외 추방을 당한다.
첫 번째 이유는 프랑스 국적자가 사전 신고 없이 전시회를 하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오수미와 신상옥 감독 사이에서 난 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던 중 북한에서 최은희, 신상옥 부부가 탈출한 후 미국 LA로 추방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추방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LA에서 하루 6불짜리 싸구려 호텔에서 투숙하며 코카인과 헤로인을 하며 1년간 마약중독자로 산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그에게 실낱같은 희망은 하루에 필름 한 롤을 사서 사진을 찍는 일이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자살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을 헤치며 언덕위로 올라오는 헤드라이트 하나가 고장 난 외눈박이 자동차를 찍는다.(사진1)
그리고는 그는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눈박이 차도 어둠을 헤쳐 가는데 나는 멀쩡하지 않은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사진으로 세상을 그리라는 것이리라. 그 후 그는 부모님이 계신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삯을 만들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한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500일간 식물인간처럼 지낸다. 그리고 88년 빅토리아 폭포에서 3일 내내 울고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한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첫 번째 동물은 사자였다. 동물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맹수에게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찍느냐는 것이다. 그는 4.5미터 앞까지 다가갔다. 이것은 죽음의 선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다행히 사자가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찍은 동물 사진으로 한국 사진작가 최초로 아프리카 사진집을 출판하며 인기작가로 발돋움하였고 2000년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패션, 광고,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의 상업 사진을 찍는다.
상업 사진을 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늘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희망의 골대 세우기' 프로젝트와 동남아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세우기' 프로젝트를 하며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들을 돕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2006년 그는 돌연 상업사진 포기를 선언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작가는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해 돈을 벌면서 안주해서는 좋은 작품을 찍을 수가 없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세계적 작가들과 작품으로 경쟁을 해야 해. 더 이상 상업사진은 하지 않겠어.’ 그리고는 사진이라는 전쟁터에서 한국을 표현하는 사진으로 외국작가들과 싸우기로 목표를 정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자연과 역사·전통을 보면서 외국 작가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발견한다. 지금 그는 한국의 자연과 역사를 카메라로 담아 수묵화, 산수화처럼 한지에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눈 오는 한라산을 찾고 강원도 산간벽지를 찾고 독도를 찾으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한민국 사진작가 최초로 소더비 경매에 등재되었으며 얼마 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작품 ‘바람의 옷’(사진2)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80만장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앞으로 100만장을 만든 후 1000장 가량은 가족에게 주고 나머지는 국가에 기증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보고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며칠 전 지난 5년간 작업한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 중 66점에 대한 저작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아버지를 닮아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고 있는 내 친구 김중만이 더 큰 꿈을 이루기를 희망해 본다.
그는 프랑스 젊은 작가상을 타고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가진 후 1985년, 1986년 두 차례 국외 추방을 당한다.
첫 번째 이유는 프랑스 국적자가 사전 신고 없이 전시회를 하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오수미와 신상옥 감독 사이에서 난 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던 중 북한에서 최은희, 신상옥 부부가 탈출한 후 미국 LA로 추방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추방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LA에서 하루 6불짜리 싸구려 호텔에서 투숙하며 코카인과 헤로인을 하며 1년간 마약중독자로 산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그에게 실낱같은 희망은 하루에 필름 한 롤을 사서 사진을 찍는 일이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자살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을 헤치며 언덕위로 올라오는 헤드라이트 하나가 고장 난 외눈박이 자동차를 찍는다.(사진1)
그리고는 그는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눈박이 차도 어둠을 헤쳐 가는데 나는 멀쩡하지 않은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사진으로 세상을 그리라는 것이리라. 그 후 그는 부모님이 계신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삯을 만들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한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500일간 식물인간처럼 지낸다. 그리고 88년 빅토리아 폭포에서 3일 내내 울고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한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첫 번째 동물은 사자였다. 동물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맹수에게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찍느냐는 것이다. 그는 4.5미터 앞까지 다가갔다. 이것은 죽음의 선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다행히 사자가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찍은 동물 사진으로 한국 사진작가 최초로 아프리카 사진집을 출판하며 인기작가로 발돋움하였고 2000년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패션, 광고,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분야의 상업 사진을 찍는다.
상업 사진을 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늘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희망의 골대 세우기' 프로젝트와 동남아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세우기' 프로젝트를 하며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들을 돕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2006년 그는 돌연 상업사진 포기를 선언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작가는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해 돈을 벌면서 안주해서는 좋은 작품을 찍을 수가 없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세계적 작가들과 작품으로 경쟁을 해야 해. 더 이상 상업사진은 하지 않겠어.’ 그리고는 사진이라는 전쟁터에서 한국을 표현하는 사진으로 외국작가들과 싸우기로 목표를 정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자연과 역사·전통을 보면서 외국 작가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발견한다. 지금 그는 한국의 자연과 역사를 카메라로 담아 수묵화, 산수화처럼 한지에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눈 오는 한라산을 찾고 강원도 산간벽지를 찾고 독도를 찾으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한민국 사진작가 최초로 소더비 경매에 등재되었으며 얼마 전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작품 ‘바람의 옷’(사진2)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80만장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앞으로 100만장을 만든 후 1000장 가량은 가족에게 주고 나머지는 국가에 기증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보고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며칠 전 지난 5년간 작업한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 중 66점에 대한 저작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아버지를 닮아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고 있는 내 친구 김중만이 더 큰 꿈을 이루기를 희망해 본다.
2011. 12. 22.
2011. 12. 21.
'사진 기부'의 행복...'꽃사진' 한우물, 자선단체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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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7.
2008. 11. 7.
행복을 위한 도전
행복을 위한 도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하기 쉬운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그것은 바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바로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명예와 부가 많다고 행복할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행복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러분에게 행복을 위한 도전을 시작하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관계’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관계’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지요. 사람에게는 다섯 종류의 나이가 있다고 합니다. 달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먹는 ‘달력 나이’, 결혼할 나이 등과 같은 ‘사회적 나이’, 스스로 느끼는 ‘자각적 나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심리적 나이’가 있다고 합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라 나잇값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어른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상대방과 논쟁해 이기려 하지 말려,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칭찬하면서 특히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아갈수록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도 그리고 무언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그동안 수고했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지는 의지만 있다면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심리적 고통은 가난이나 육체적 통증 같은 물리적인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합니다. 암환자의 육체적 통증은 지독하지만 그러나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심리적 소외감과 절망감이라고 합니다. 열등감, 죄책감, 상실감, 배신감, 억울함, 소외감, 고독감이 인간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는 감정들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감정이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현실을 인정해야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현실을 외면하고 좋았던 추억 속에서만 머물러 산다면 영원히 그 고통에서 나올 길은 없는 것입니다. 직면하기 끔찍해 외면했던 일이라도 일단 인정하면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담대해진다고 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면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워지며 고통을 피하느라 기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바뀌고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5년 후, 10년 후의 꿈은 무엇입니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1988년에 스코틀랜드 근해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입니다. 석유시추선이 폭발하여 배에 불이 났고 그 사고로 168명의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에 있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배에 타고 있던 사람 중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타는 배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두렵지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차갑고 어두운 바다로 뛰어들었던 다 한사람이었습니다. 변화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두렵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바로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생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익숙하지만 불타는 갑판에서 죽음을 맞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낯설고 두렵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차갑고 어두운 바다로 뛰어들겠습니까?
성공하고 싶다면 ‘생각’ 만으로는 안 되며, 행복해지고 싶다면 ‘실천’해야 하며, 그리고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할 만큼 늙지 않았습니다.
멀리뛰기를 하지 못할 만큼 허약하지도 않습니다.
우산으로 자신을 가려야 할 만큼 외롭거나 비관적이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눈은 별을 바라보지 못할 만큼 시력이 나쁘지도 않습니다.
당신께 필요한 일은 한 가지,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옛 노트에 적어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당신 가슴 속에서 작은 불씨로 남아 있는
그 ‘꿈’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삶이 때로 낯설고 이상한 것이긴 하지만,
신은 목적을 갖고 당신을 이곳에 있게 했습니다.
당신께서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살기를 희망했던 ‘내일’입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소망하셨던 ‘꿈’이 있으셨다면,
오늘 아니 지금 시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강철 왕이자 인간관계의 대가인 앤드류 카네기의 ‘가장 쉬운 행복의 발견’이라는 글에서 ‘행복을 찾는 공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모든 물건, 모든 가족 그러니까 아내나 남편, 아들, 딸, 자동차, 집, 저축통장, 직장, 건강, 안경, 전화 등을 다 적어본다.
둘째, 이 모드 것들이 다 불타 버렸거나 상실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직장에서 쫓겨났다거나, 암 선고를 받았다거나,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끔찍한 생각을 해 본다.
셋째, 사라졌던 그 모든 것이 하나씩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고, 완전히 처음의 상태로 환원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상의 공식을 밟으면 지금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친구가 있는 것이 감사하며, 집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단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으며, 결국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게 되노라고……
이 내용은 ‘정우’지 2008년 11월호에 실린 박시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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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감동시킨 일본인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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